그리고 머무는 당신에 관하여 기타 October, 2019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의 건축>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간의 만듦새가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다. 삶을 확대한 또 하나의 세계, 건축이라는 우주에서.

시작은 공간이었지만 이야기는 우리네 사는 풍경으로 꼬리를 물었다. 돌이켜보니 이토록 많은 질문을 받은 인터뷰도 드물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역할이 무색해진 채 대화를 넘나들다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이 순간 자체가 그가 생각하는 건축의 본질은 아닐까 하고. SKM ARCHITECTS의 민성진 대표는 그렇게 질문하는 속에서 답을 건네고 있었다.


건축가는 귀 기울여 듣는 사람
“건축은 결국 우리네 삶을 공간에 구조화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흩어진 여럿을 총체적인 하나의 구조로 만들어나가는 ‘유기적’ 생명체와도 같지요. 때문에 내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다양한 마음을 헤아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모든 사고가 구체화된 이후 라야 겨우 공간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요.”

아난티 코브 부산, 아난티 코드(구 아난티 클럽하우스&펜트하우스 서울), 부산 힐튼호텔과 아난티 남해(구 힐튼 남해) 스파&골프 리조트, 파주 북시티 헤르만 하우스까지 유수의 프로젝트를 통해 남다른 건축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민 대표는 건축가는 최고의 청자이자 번역가여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건물이 왜 필요한지, 어떤 이들이 사용할지, 무슨 활동을 하며 어떤 기능과 역할이 필요할지 차근차근 ‘듣는’ 과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얘기.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고 주변환경에 기여하며 사용자의 목적에 꼭 맞게 부합하는 공간은 바로 거기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일 때라야 일상에서 특별한 경험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서다. 그의 말마따나 머무는 자체가 하나의 영감이 될 수 있는 ‘공간 경험’은 단순히 고유 기능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배려와 고민이라는 프로그램도 함께 수반될 때 가능하다.


ⓒ김동규
마치 숲 한가운데 존재하는 듯 다양한 식물로 뒤덮여 있는 SKM ARCHITECTS 사옥. 무성한 풀이 야트막한 담을 따라 올라가며 풍성한 실루엣을 완성한다.


통유리를 통해 빛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1층 회의실. 창 너머 앞뜰이 한눈에 들어온다. 회의실에는 벽면 전체에 SKM ARCHITECTS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아트 월처럼 장식하고 서가에 민성진 대표의 취미이기도 한 말 오브제 컬렉션을 전시했다.



허리를 낮춘 집
삶을 탐구하는 그의 철학은 삼성동에 자리한 SKM ARCHITECTS 사옥에도 잘 드러난다. 한적한 주택가 골목 어귀, 소담하게 자리한 건물은 마음을 기울이지 않으면 쉬이 지나치기 십상. 마치 부러 몸을 숨긴 듯한 건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변에 스며 있는 모양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의 건물은 빌딩 숲을 훌쩍 벗어나 낮고 단정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작은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마치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듯 훌쩍 키를 넘는 통창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1층부터 2층까지 관통하는 높은 천정고. 보통 건물에서의 한 층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6m에 이르는 층고는 시원하면서도 탁 트인 공간감을 선사한다. 지하층은 약 5m, 2층은 4m 남짓으로 4개 층 높이에 총 2개 층을 구현한 셈. 여백의 레이어를 이룬 공간은 쾌적한 데다 통창으로 스민 햇살 덕분에 남다른 생기를 띤다.

“앞뜰은 통창을 가운데 두고 1층 회의실과 면하고 있어 그저 시선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간소한 명상이 됩니다. 건물 전체를 두른 덩굴은 사계절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데 그 또한 하나의 아트 월이 되어주지요. 종종 주민들이 저희 덕분에 동네 풍경이 변했다고 인사를 전하는데 그때가 가장 기분 좋아요(웃음).”

간결하고 모던한 건물은 속을 비운 망에 심은 꽃이며 덩굴 식물과 대비된 듯 조화를 이뤄 계절과 함께 피고 지는 ‘진행형’의 모습을 보여준다. 벽을 식물로 장식하는 녹화는 종종 이루어지는 연출법이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 매해 다양한 식재를 통해 건축과 절기에 어울리는 식물을 연구하는 그는 단순히 이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형태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내용이 빈약해지기 쉽지요. 건물을 설계할 때 머릿속으로 하나의 장면을 그려보는데 사옥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간 안에서의 느낌과 경험을 상상하다 보면 거기서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 같아요.”


1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입구. 천장에서 내려오는 자전거 2대가 이국적이면서도 개성 넘치는 인테리어를 완성한다.
2 공간 곳곳에는 민 대표가 취미로 제작하는 말 오브제를 놓았다.
3 짐짓 과장되거나 포장되는 걸 경계한다는 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야기 나누고 상대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가 그리는 공간 역시 마찬가지. 겉모습에 집중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진솔한 메시지가 공유되길 꿈꾼다.”


SKM ARCHITECTS 사옥 입구에서는 “편안한 장소에서 건축에 몰입할 수 있는 일상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라는 다정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층고와 콜라주처럼 진열한 건축 모형과 사진들,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빛과 공기는 말 그대로 ‘선물 같은’ 일상을 선사한다.


2층에 위치한 아틀리에에서는 민성진 대표가 그간의 프로젝트를 모티프 삼아 작업 중인 프린트 아트워크를 마주할 수 있다. 그는 건물 구조를 선과 면으로 해석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과 교감하는 태극권
이 밖에도 중정과 앞마당, 옥상 정원까지 SKM ARCHITECTS 사옥은 식물에 대한 지분율(?)이 꽤 높은 편이다. SKM ARCHITECTS 사옥은 595m2 (약 180평) 대지 위에 595m2 의 정원을 벽과 옥상, 야외 조경에 만들어 건물이 들어오면서 사라진 자연을 다시 만들어낸다. 개중에서도 옥상에는 다양한 나무를 심어 마치 식물도감을 보는 기분이다. 도심 환경에서 각 식물의 실제 생육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일종의 연구실인 셈이다. 인위적이기보다 대담하고, 주변 환경과 대화하는 건축을 즐겨 선보이는 참으로 그다운 발상이다.

“생각해보면 자연만 한 예술이 없어요. 늘 때가 되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마치 계산한 것처럼 그럴싸하게 어울리지요. 여름의 짙은 초록부터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지금까지, 잎은 저마다 모두 다른 그러데이션을 보여주지만 그게 한 몸처럼 어울리거든요.”

그는 자연과 싸우지 않는다. 맞서지 않고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태극권처럼 주변 환경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할 뿐. 자연과의 교감은 유기적 동선의 사옥에서도 빛난다.

“건축은 자연과 인간 둘 사이에 존재합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맺게 마련이고 이를 통해 더 풍성한 얼굴이 탄생하지요. 중요한 건 이것이 단편적이지 않고 입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빛과 바람, 해의 기울기와 변화하는 계절의 온기 따위가 만들어내는 우연의 무엇이 건축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요.”

실제로 아난티 코브는 각 시설을 오가며 경험하는 동선이 한 번에 다 읽히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가능하도록 디자인했다. 이용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자연을 더 다채롭게 즐기고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한 것. 드러내지 않고도 우리들 내부의 평화와 자유를 호출하고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일체감도 염두에 두었다. 리조트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도록 자연과 함께하는 재충전과 휴식이라는 가치 또한 놓치지 않았다.


사옥의 곳곳은 사무실이었다가 카페, 다시 갤러리와 박물관으로 변모한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영감의 산물이다.


자동차의 폐부품과 목재를 활용하는 정크 아트는 민 대표의 오랜 취미. 고대의 ‘말’과 현대의 ‘자동차’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트랜스포메이션의 중의적 의미를 담는다.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쓸모와 가치를 찾아내는 기쁨이 크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햇빛이 비치는 날, 머리 위 날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SKM ARCHITECTS의 사옥.



미래의 고전
SKM ARCHITECTS 사옥이 특별한 이유는 건축가가 직접 설계하고 경험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간 설계는 숙명적으로 의뢰에 의해 진행되게 마련인데 건축가 스스로 직접 다양한 시도를 해봄으로써 최적화된 공간 모델을 완성했다. 대지에 대한 섬세한 고려, 초록 식물과의 교감, 빛과 바람, 공간감에 대한 깊은 고민을 현실로 빚어냈다. 이렇듯 SKM ARCHITECTS는 건축물의 시대적 가치와 존엄적 가치를 탐구한다. 공간에서의 경험은 비단 파사드나 외형적인 측면만 이야기하는 건 아닐 터. 특히나 최근에는 이용자가 더 쉽고 명료하게 공간을 체험케 하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여기에서 건축가의 ‘장인 정신’이 필요하다. 건축은 예술과 실용의 중간 지점에 있는 만큼 작가주의에 입각해 디자인하되 동시에 기능에 충실한 건물을 추구해야 한다. 공간은 이용자가 공감각적으로 직접 평가할 수 있기에 물리적, 육체적 경험은 물론이거니와 정서적 경험을 고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양한 군상과 그들만의 고유 문화를 존중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을 겸허히 해나가야 하는 이유. 시대의 현상을 응시하고 선도해나가야 할 의무도 챙겨야 한다.


1 2층에 자리한 대회의실. 회의가 많은 직원들을 위해 동선을 고려해 1층과 2층에 각각 미팅 룸과 회의실을 마련했다.
2, 3 사무실 구석 구석에서 만날 수 있는 손때 묻은 오래된 연장과 빈티지 계산기. 시간의 켜가 쌓인 물건을 좋아하는 민 대표의 취향이 엿보인다.



나에게 몰입하는 시간
1층 회의실 서가에서는 그의 다양한 관심이 읽힌다. 루이스 칸부터 도스토옙스키, 헤르만 헤세와 카프카까지 ‘공간’으
로 귀결되는 인간에 대한 궁금증은 스펙트럼도 넓다. 건축할 때 근본이 무엇이냐를 항상 고민한다는 그는 현 사회 현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놓치지 않는다. 단순히 하나의 유형으로서의 건축물이 아닌 그것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마음 즉 철학적 접근법이다.

“오션 파크(Ocean Park) 연작으로 유명한 리처드 디벤콘(Richard Diebenkorn)이라는 작가가 있어요. 그를 보면 얼마나 일에 집중하며 삶과 융합했는지를 알 수 있어요. 작품 활동에 몰두하며 끊임없이 자기 진화를 이루어냈지요. 현대 사회는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잖아요.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고요히, 스스로와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는 ‘멀티’가 덕목으로 대접받는 시대에 자신의 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생각해 보면 때로 집처럼 편하고 카페처럼 유연한 사옥은 그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최상의 해법이 아니었을지. 일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 수단이며 나를 끊임없이 발전 시키는 장이자 사회와의 소통 창구이고 개인이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렇듯 온전히 심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건축가라면 더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야 할 터.

인터뷰 말미, 끝은 공간이었지만 이야기는 다시 삶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 “나쁜 건축이란 결국 설계의 실패인 동시에 심리 파악의 실패”라는 말마따나 건축을 논하고 공간을 나누는 것은 결국 거기 머무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으니까.


1 지하 1층 한쪽에는 설계실이 위치해 있다. 안쪽의 중정에서는 원형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통해 각 층과 연결되는데 이렇게 해서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공간이 탄생했다.
2 2층 로비 한 편. 벽에 건 건축 모형이 하나의 조각품으로도 손색없다.


1층에서 바라본 유리 천장. 잠자리 모빌이 마치 하늘을 유영하는 듯한 착각이 일게 한다.

Editor홍지은

Photographer이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