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맛, 렌즈미식 시대 기타 November, 2019 점점 까다로워지는 식자재 선택과 차별화된 콘셉트 전쟁 속에서 요식 업계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요컨대 맛을 오감으로 즐기는 시대다. 식음 공간의 체질 개선을 불러온 라이프스타일 요인에서 F&B 디자인 트렌드를 짚어본다.

전북 고창의 시골 마을에 새로 생긴 한 농장에 자리 잡고 ‘파머스 빌리지’라는 간판을 단 레스토랑에서는 매일 아침 파프리카를 먹고 자란 닭이 낳은 달걀로 프라이를 해준다. 노른자가 어찌나 탱글탱글하고 선명한 노란색을 띠는지, 처음 공간에 들어갔을 때 마주하는 전면 유리벽과 유리 천창의 첫인상만큼이나 강렬한 임팩트를 준다. 매일유업이 만든 체험형 농장 ‘상하농원’은 젖소와 양,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이 뛰노는 너른 들판을 자랑한다. 직접 키운 닭이 낳은 달걀과 젖소에서 짠 우유로 만든 식품을 판매하는 검증형 체험 레스토랑은 최근 F&B 디자인을 기획하는 데 주효한 콘텐츠 중 하나. 이처럼 체험을 극대화하는 스토리텔링은 건물과 농장 곳곳에 녹아 있다. 화장실의 남녀 픽토그램이 사이좋게 농부 모자를 쓰고 있는가 하면 단체 방문객이 투숙할 수 있는 대형 룸은 농부의 기숙소를 소박하면서도 감도 있게 재현해내고 있다.

쇼핑보다 외식을 즐기는 요즘 소비자에게 밖에서 먹는 한 끼는 쇼핑이 주는 즐거움까지 줘야 한다. 물론 맛으로 검증된 식당이어야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지만 맛만으로 부족하다.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개성을 입은 독특한 감성이 없다면 시나브로 증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구든 천창이든 오픈 키친이든 그도 아니면 서비스가 되었든 그 식당만의 특별함이 필요하며 음식 맛과 함께 포스를 뿜어내는 ‘한 방’을 품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의식주체락
요즘은 의식주만으로는 라이프스타일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의식주체락(衣食住體樂)으로 범위가 확장되었다. 마치 오감을 자극하듯이 이 다섯 가지 영역을 두루 섭렵해야 소비자의 만족도는 극대화되고 비로소 일상이 되며 나아가 문화가 된다. 그중에서도 ‘식(食)’의 영역은 이런 흐름의 가장 중심에서 변화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맞고 있다.

요식업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은 단연 1인 가구와 SNS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한국 시장은 간편식이 발달하고 배달 음식은 전성시대를 맞았다. 배달 음식의 폭발적 성장, 밀 키트와 새벽 배송 이슈는 차치하고, 요식업에도 공유 바람을 몰고 왔다. 매장 없이도 식음 사업을 할 수 있는 시대, 부엌 없이도 식당 주인이 될 수 있는 시대다. 원하는 시간만큼 임대해서 쓰면 되는 공유 주방 덕이다. 공간 디자인의 트렌드를 내·외장재와 컬러, 조명과 개방형 디스플레이인 사이니지로 모두 설명할 수 없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유형의 디자인 요소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식음 공간이 들어선 상권과 콘텐츠 그리고 고객 서비스란 얘기다. 공간의 중앙을 차지한 주방에 입점 업체를 위한 싱크대와 조리대를 칸칸이 나누어 놓거나 맛집에서 줄서기&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 업체와의 제휴로 고객 편의성을 높이는 등 F&B 시장에는 외식 생활과 관련된 새로운 모델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F&B 디자인의 두 번째 변화는 첨단 서빙이다. 농촌과의 상생, 좋은 식자재 사용 등을 강조하기 위해 레스토랑 안에 텃밭을 들여놓던 친환경 디자인은 어느덧 로봇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적극적으로 무인 키오스크와 로봇을 도입하면서 레스토랑과 카페가 첨단화되고 있다. 기술의 보편화와 인식 개선에 힘입어 급기야 로봇이 레스토랑에서 활약하게 된 것. 주문을 받거나 음식을 나르기만 하던 수동적 자세에서 나아가 직접 피자를 만들고 커피를 내려주기도 하는 핵심 역할까지 수행한다. 앞서 이야기한 한 방을 첨단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드러지는 요식 업계 트렌드는 ‘별들의 전쟁’.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쉐린 3스타를 획득한 한식당이 화제가 된 이후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미쉐린 식당을 탐방하는 미각 노마드가 현저히 증가했다. 디너를 기준으로 1인당 1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미쉐린급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나날이 늘고 있다. 맛도 공간도 가격도 모두 상향 평준화된 것이다. 음식과 프레젠테이션 그리고 서비스의 퀄리티는 높은 반면 분위기는 오히려 적당히 캐주얼하다. 장소와 브랜드를 각인시킬 하나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힘을 빼는 것이다. 즉 가격과 고급스러움이 동등하게 해석되는 시대를 지나, 디테일과 에지에서 진정한 프리미엄을 찾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맛과 멋 그리고 힐링
올여름 드디어 국내에 상륙한 블루보틀이 10월 현재 4호점까지 출점하며 매장 수를 늘리고 있다. 대중의 예상을 깨고 성수동의 빨간 벽돌 건물에 1호점을 낸 이후 삼청동에 2호점, 선릉역과 압구정 안다즈 호텔 1층에 각각 3호점과 4호점을 열었다. 강남의 대로변 역 앞에 자리한 3, 4호점의 모습은 어쩐지 스타벅스 같은 느낌이다. 아쉽게도 번화가 대로변에 자리한 한국의 블루보틀은 소위 ‘찾아가는 맛’, ‘발견하는 기쁨’을 저버렸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식음 공간 디자인이 입지로 확장되는 이유는 F&B의 공간 디자인을 논하는 데 상권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F&B는 이제 맛집 이상의 역할을 한다. 주변 상권에 지대한 영향을 주며 지역 콘텐츠로 자리매김하는 추세이며, 도시의 맥락을 고려함으로써 공간 디자인의 영역을 입지부터 서비스로까지 확대하는 모양새다. 개중에서도 두드러지는 현상은 인상적인 코어 공간을 중심으로 리드미컬한 테넌트(Tenant) 구성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점. 기찻길이 나 있거나 멋진 분수가 있거나 혹은 특화된 조경이 있거나 무언가 핵심이 될 만한 포인트가 있을 때 이를 중심으로 F&B 존이 들어선다. 실제로 현재 상하이에서 가장 핫한 공간인 상생신소(上生新所) 컬럼비아 서클은 코어 공간으로 ‘수영장’을 선택했다. 또 그런가하면 로봇이 서빙하고 요리하는 세상에 직간접적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경험하며 식사하는 일은 신선한 체험으로 환영 받을 일이다. 고급스러운 아일랜드 키친에서 전문 셰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마치 쇼를 감상하듯 볼 수 있는 오픈 키친 역시 여전히 강세다.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로서 디자인 가구를 컬렉션하거나 인상적인 예술 작품으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도 꽤 바람직한 변화란 생각이다.

바야흐로 Food & Beverage를 뜻하는 F&B라는 단어가 Food & Healing으로 바뀌어야 할 때다. 식당이 배고픔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소속감과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까지 의미가 확장되고 있어서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힘, 의식주체락을 쥐락펴락하는 식음 공간이 명실상 부한 메가 콘텐츠로 발돋움 중이다.


1 최근 상하이에서 가장 핫한 복합쇼핑몰 컬럼비아 서클의 F&B 존. 중앙 수영장을 둘러싸고 음식점과 카페가 입점해 있다. 쇼핑보다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방문하는 목적이 더욱 뚜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 성수동에 문을 연 화제의 카페봇(bot). 커피를 내려주는 로봇 바리스타가 전혀 기괴하거나 키치해 보이지 않도록 워킹 존을 프로페셔널하게 설계했다. 덕분에 개성과 힘을 더한 공간이 탄생했다.


안지용 건축가는
매니페스토 디자인랩의 안지용 대표는 명동의 M플라자, 코엑스 메가박스의 공간과 브랜딩 리뉴얼, 삼성+하만(HARMAN) AV 공간 기획, 남산타워 리뉴얼 기획, 복합쇼핑몰 동춘175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리뉴얼한 건물의 가치가 상승하고 새롭게 기획한 공간이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상공간 전문 아키텍트로 자리매김했다. 뉴욕에서 활동했을 당시 미국건축가협회 디자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실력파로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3년 연속 한국건축가협회 100인의 건축가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Red dot, iF, IDEA의 디자인상을 모두 수상했다.

이향은 교수는
UX 트렌드와 사용자 심리를 연구하는 성신여자대학교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2009년부터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와 함께 트렌드를 연구하며 <트렌드코리아 2011>부터 <트렌드코리아 2019>까지 총 10권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2012년 서울대학교 디자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향은 교수는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어워드인 독일 iF Design Award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교육 외에도 디자인과 소비 문화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대유 위니아 등 기업들의 디자인 경영 컨설팅과 자문, 혁신 제품 콘셉트 개발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ditor홍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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