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밥(BEBOP) 스튜디오 기타 August, 2019 우리가 좋아하는 것. 재미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모여 지금의 비밥이 완성되었다. 정돈된 듯 자유분방해 보이는 이곳에서 비밥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자유로운 디자인 플레이
깔끔하게 정리한 작업대, 벽에 붙인 아이디어 보드 등 여느 디자인 사무실과 다름없는 공간이지만 허물없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나 곳곳에 놓인 자전거, 스케이트보드 등을 보고 있자니 친한 친구들이 모인 아지트 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이곳은 공동 대표 정수헌&리치 박과 디자이너 김민기, 박찬홍이 함께 이끌어가는 디자인 스튜디오 비밥의 홈그라운드다. 제품 디자인을 중심으로 영상, 그래픽, 웹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그들의 작품은 ‘우린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을 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우르는 범주는 넓지만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한 미니멀함 속에서 특유의 다이내믹함이 느껴지는 일관성은 분명해 보인다고 해야 할까. 비밥의 수장 정수헌, 리치 박은 사디(SADI) 재학 시절 처음 만났다. “졸업 후에 바로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브랜드를 어떻게 만들고 운영해야 할지 조금은 막막하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취업을 하기로 결정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배운 다음 최대한 빨리 우리 것을 해보자고 약속했어요.” 정수헌&리치 박은 사디 졸업 후 독일 디자인의 중심지 뮌헨으로 건너가 각각 미국의 대표 디자인 회사인 티그(Teague)와 삼성전자의 유럽 디자인 연구소인 펠릭스 헤크(Felix Heck)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후 한국으로 돌아와 지난 2016년에 비밥을 만들었다. 올해로 스튜디오를 연 지 4년 차가 된 이들은 3년 정도는 둘이서만 운영하다가 좀 더 폭넓은 아이디어를 다뤄보자는 생각에 지난해 김민기 디자이너를, 한 달 전 즈음 박찬홍 디자이너를 새로 영입했다. ‘비밥(BEBOP)’이라는 이름은 스튜디오 오픈 당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것. “재즈 연주 스타일인 비밥은 정해진 틀은 있지만 즉흥적으로 음을 바꿔가면서 음악을 만들어가는 것이 특징이에요. 저희 스튜디오 역시 디자인 프로세스는 가져가되 클라이언트나 여러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죠. 또 다른 스튜디오에 비해 디자인을 완성하는 페이스가 비밥의 속도감처럼 좀 빠른 것 같기도 하고요.”



단순함에서 찾은 위트
비밥을 만들고 나서는 스타트업과 일을 많이 하길 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정수헌&리치 박 대표. “독일에서 회사를 다닐 땐 주로 대기업의 일을 맡아서 진행했는데 대기업의 경우 이미 디자인 라인업이 완성되어 있어서 아예 새로운 것을 할 수 없을뿐더러 딱딱한 디자인이 나올 수밖에 없더라고요.” 스튜디오 오픈 당시 한국에서도 스타트업 열풍이 불었지만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회사가 대부분이어서 자연스럽게 해외 쪽 스타트업과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퀀텀 베이커리(Quantum Bakery)’를 위해 휴대용 VR 뷰어로 활용할 수 있는 휴대폰 케이스를 디자인하기도 했고, ‘코닝(Corning)’의 파이브런스(Fibrance) 레이저 라이팅 기술을 이용패 퀀텀 베이커리와 중국의 ‘메이주(Meizu)’가 협업해 만든 레이저 이어폰 등 여러 초기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지난해에는 인도의 스타트업과 함께 360도 촬영 가능한 대시캠(블랙박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는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크라우드 펀딩 투자를 받기 위한 것이라 예산이 적기도 적었고 스케줄이 3주 정도로 타이트했다고. 하지만 시간 내에 제품 디자인부터 워킹 목업, 로고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웹 디자인, 영상 촬영을 모두 마무리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킥스타터에서 65만 1656달러(한화로 약 7억6000만원) 투자를 받아 힘들었던 과정만큼 더 기억에 남는다고 정수헌 대표는 회상한다.

비밥이 걸어온 아니 앞으로 걸어갈 방향성에 대해 묻자 첫인상이 매력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들은 디테일한 요소까지 신경 써서 작업하는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조형이나, 사람들이 제품을 쓰면서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사용성 등을 고려해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한다. 그동안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작업을 해온 터라 진행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또 중요했다고 리치 박 대표는 설명하는데, 조율뿐만 아니라 왜 이런 디자인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제품의 디자인이 왜 중요한지를 클라이언트에게 알려주는 것이 본인들의 숙제인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는 하이테크 요소가 들어간 IT 기기 말고도 가구 디자인처럼 순수하게 조형성과 사용성만 생각한 다양한 작업을 해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비밥의 색깔을 정의해달라고 요청했다. “우리의 색깔을 정의하고 싶진 않아요. 디자인할 때 비밥의 색깔을 제품에 전략적으로 녹여내기보단 매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시도하는 것에 집중하거든요.”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애초에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제약을 두지않고 자유롭게, 크리에이티브하게, 유연하게 움직이는 비밥이다.


1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민기·박찬홍 디자이너, 정수헌·리치 박 대표.
2 스마트폰을 통해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제작한 ‘Figment VR’. 케이스 뒷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VR 렌즈가 펼쳐지도록 제작해 한 손으로 케이스를 들고 렌즈를 통해 스마트폰 화면을 감상할 수 있다.
3 스마트폰을 주력으로 하는 중국 메이주의 의뢰를 받아 파이브런스 기술을 이용한 ‘Meizu Halo’ 블루투스 이어폰을 디자인했다.
4 지난해 인도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디자인한 360도 촬영 가능한 ‘VEZO 360’ 대시캠.
5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것이 아닌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아이템들이다.

Editor김민선

Photographer박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