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익숙함을 찾아서 기타 January, 2019 기해년 새해, 각 분야의 트렌드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는 불안을 품고 있지만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희망으로 바라보면 시작이란 늘 설레고 신나는 일. 뛰는 가슴으로 올해의 디자인 흐름을 짚어보았다.

삶이 곧 트렌드
2019년이 밝았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새해를 키워드로 사회와 문화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트렌드 정보가 넘쳐난다. 물론 요즘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분석’에 가깝다 보니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보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느낌이라 약간의 불편함도 생긴다. 예술과 디자인은 다양성이 존재할 때 영향을 미치고 영감의 존재로서 발전하게 마련인데 지표화된 트렌드 분석에 맞춰 서로 경쟁하듯 획일화된 복제품과 공간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디자인 분야도 다르지 않아서 해마다 다양한 예측이 쏟아져 나오고, 많은 채널이 이를 확대·재생산한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으면 소위 감 떨어지는 수준을 넘어 지켜야 할 법칙을 외면한 것 같은 걱정도 생기지만 따지고 보면 트렌드야 말로 우리네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흐름 아니던가. 그러니 무엇이 되었든 그 면면을 살피는 일은 필요한 과정임에 분명하다. 트렌드나 유행이 획일화, 양식화된다 하더라도 동시대와 문화로부터 기인한 거스를 수는 없는 흐름이니 무조건 부정하거나 평가 절하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소비자건 디자이너건 추이를 잘 지켜보며 나름의 중심을 잃지 않는 지혜일 테다.


ⓒBarcelo Torre de Madrid Hotel

하이메 아욘의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레트로한 분위기를 완성한 바르셀로 토레 드 마드리드 호텔.



2019년이 사랑할 디자인
디자이너로서 관심 있게 보고 있는 트렌드를 소개하려다 쓸데없는 노파심에 서론만 길어졌다. 우선 2019년 트렌드 예측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뉴트로(New+Retro)’다. 말 그대로 ‘새로운 복고’라는 의미의 신조어인데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쯤으로 해석하면 틀리지 않다. 옛것에 대한 단순한 향수가 아닌, 옛것을 새롭게 즐기는 것이라고 하는데 모호한 경향이 없지 않다. 어찌 되었건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시대 분위기상 기성세대에겐 익숙한 편안함으로 젊은 세대에겐 역사성이라는 가치로 각광받을 것은 분명하다. 옛것과 새것을 단순히 믹스 매치하는 수준 또는 서구 사회의 그것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 아니면 우리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융합된 가치있는 디자인으로 발전할지는 우리의 문화적 소양에 달려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로서의 바람이라고 하면 뉴트로가 옛것을 재활용하는 리사이클드 레트로(Recycled Retro)가 아닌, 우리 고유 문화와 역사성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업사이클드 레트로(Upcycled Retro)로 K-Design 세계화의 기회가 되길 바란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그렇듯 필자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음악, 패션, 영화, 미술 등 다양하다. 개중 최근 관심 깊게 보는 것은 ‘보태닉(Botanic)’ 이른바 자연주의 경향이다. 이미 음악과 패션 분야에는 폭넓게 퍼졌으며 점차 건축과 공간 관련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 예로 최근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트로피컬 하우스(Tropical House)’라는 장르를 꼽을 수 있다. 트로피컬 하우스란 EDM 음악의 한 종류로, 그간 EDM이 강렬한 기계음의 하드코어 하우스(Hardcore House)가 대세였다면 트로피컬 하우스는 밝고 경쾌한 느낌의 악기 구성과 청량한 멜로디가 특징이다. 노르웨이의 카이고(Kygo)라는 DJ를 필두로 릴랙스한 감성을 만들어내는데 듣고 있노라면 마치 남태평양의 휴양지에 온 느낌이다.


음악을 너머 공간에서도 식물의 힘이 돋보인다. 그동안 런웨이를 제외하곤 온통 어둡고 텅 빈 공간에서 진행하던 패션쇼 무대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 실제 숲이나 정원을 무대로 활용하기도 하고 자연을 모티프로 연출한 패션쇼를 여는 등 모델과 의상에 집중되던 연출 방식이 주위의 환경, 특히 자연을 소재로 한 배경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유럽의 빅 브랜드 가구 광고나 매장 디스플레이에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된다. 주목할 점은 되레 가구가 배경이라고 느껴질 만큼 그 비중이 증가 중이라는 데 있다. 아마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 속 아날로그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출현이리라. 하긴 ‘보태닉 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은 ‘살아 있다’는 점 아니겠는가. 통상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것이 개념과 형태, 물성, 기능 등이었다면 최근의 경향은 단순히 친환경을 표현하는 객체가 아닌 ‘생명 자체’로서 자연의 순수성과 강인함,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식상한 것은 싫어한다”. 마케팅 분야의 세계적인 컨설턴트 해리 백위드는 말한다. 자칫 말장난으로 느껴지는 문구처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질적이지도 않으며 동시에 구태의연하지도 않은 ‘신선한 익숙함’을 추구한다. 어쩌면 2019년은 그의 말마따나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지 모르겠다.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 우리 사회가 트렌드 자체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삶 그 자체를 겸허히 들여다보고 우리만의 개성 넘치는 가치로 세계로 뻗어나가는 일이다.


ⓒPARKROYAL on Pickering Hotel

싱가포르에 위치한 파크로얄 온 피커링 호텔. 흙과 물, 식물 등의 자연 소재를 공간 디자인에 접목해 도심 속 정글처럼 연출했다.




공간 디자이너 허혁은?
디자인투모로우의 대표 디자이너이자 한국실내건축가협회(KOSID) 부회장,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라데팡스 국립건축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파리 팡테옹소르본 국립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8 K-DESIGN AWARD GOLD WINNER, 2015·2016 KOSID 골든스케일 디자인어워드 협회상, 2011 SDAK 한국공간디자인대상 회장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다수의 고급 주거를 비롯해 상업 공간과 호텔을 넘나들며 다양한 공간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www.dtomorrow.com

Editor홍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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