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평등한 디자인 민주주의 기타 August, 2020 지난 한 해는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슈로 넘쳐났다. 디자인계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아우른 휴머니즘 기능주의 디자인의 시초, 예술 학교 바우하우스를 다시 꺼내 보았다.

코로나19의 여파가 길어지며 운신의 폭이 예전 같지 않다. 온라인에서 만나는 전시, 강의, 여행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랜선’ 세상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이유로 실체를 마주하는 즐거움, 즉 경험의 가치는 더 선명해지고 있다. 건축도 예외는 아니라, 다시금 베를린을, 자연스럽게 데사우를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몇 해 전 독일 베를린 출장길에서였다. 운 좋게도 하루라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바우하우스를 둘러보기로 하고 새벽에 기차표를 끊었다.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생각보다 일찍 다다른 정류장에서 마음은 벌써 바우하우스 조형학교를 찾아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바우하우스는 단순한 여행지라기보다 ‘순례’에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이라선지 사람 하나 없는 데사우 거리를 즐기며 15분 정도 걸었을까. 그간 숱하게 접하며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학교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장식적 요소를 걷어낸 건물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담백했다. 내외부의 구별 없는 기하학적 건축 구조를 콘크리트와 철, 유리 등의 산업 소재만으로 빚어낸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했다. 물론 그 지점이야말로 현재까지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건물을 감싼 수많은 격자 그리드 창은 아침 하늘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는데 회색 노출벽에 바우하우스체로 적힌‘BAUHAUS’, 입구에서 발견한 레드 컬러의 문에 다다르자 비로소 그 공간 속에 있음을 실감했다.


바우하우스 스피릿
1925년에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바우하우스 조형학교는 명실공히 모더니즘 건축의 시작이라 일컬어진다. 어떠한 사건이나 변화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마련인데 바우하우스도 마찬가지. 이는 곧 건축과 삶이, 세상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면서 사회적 당면 과제로 떠오른 건 주택의 대량 생산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수공업에서 생산량을 대폭 늘린 기계생산 시대가 열렸고 보다 표준화, 대량화에 박차를 가한 시대적 상황은 고스란히바우하우스의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미술공예운동으로 인한 수공예의 재성찰, 독일 공작연맹의 표준화 등은 발터 그로피우스로 하여금 ‘전혀 새로운’ 건축의 필요성을뼈저리게 느끼게 했을 터다. 바우하우스는 이렇게 점점 산업화되는 사회에서 조각, 회화, 공예 모두를 건축에 통합하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모더니즘의 근간을 마련했다.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의 이념이자 100년이 막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의 건축, 디자인, 예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살아 있는 역사로 자리매김한 배경이다.


1 ‘BAUHAUS’가 선명한 건물 입면은 이방인을 반기는 듯하다.
2 기능에 충실한 조명과 선명한 색감이 인상적인 바우하우스 내부.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바우하우스 입구의 작은 로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천장 조명. 일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기능에 기반해 디자인한 게 분명해 보였다. 공간의 첫인상을 완성해준 조명의 독창적 조형성은 공간 안에서 자연스레 녹아들었고 텅 빈 공간에 빛이라는 효과로 균일한 리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층 공방 공간은 현재 박물관과 바우하우스 제품을 판매하는 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하나의 큰 ‘가구’처럼 디자인한 화장실 구조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떻게 보면 마주 보는 그리드 창과 함께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느낌마저 들게 하는데 이 또한 공간으로써 이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 묘한 장치인 셈. 계단실을 통해 2층에 다다르면 정면으로 큰 창과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를 마주하게 된다. 창너머 보이는 데사우의 고즈넉한 풍경도 좋지만 옆으로 이웃한 학교 건물의 일부가 풍경을 만들어내는 차경으로써의 바우하우스도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뒤로는 아주 긴 복도가 이어지는데 계단실을 비롯해 공방과 복도마다 바우하우스를 상징하는 빨강, 파랑, 노랑의 컬러가 단면과 벽, 계단 난간 벽 부분 부분을 채우며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마치 러시아 구성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듯 하나의 추상회화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느낌이랄까. 2차원을 넘어선 공간은 심지어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바우하우스 조형 학교에서 5분 정도의 거리에는 당시 마이스터였던 발터 그로피우스,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라이오넬 파이닝어 등이 집으로 사용했던 4채의 마이스터 하우스가 있다. 한마디로 바우하우스의 정신을 주거 공간으로 압축해놓은 곳. 손잡이부터 스위치 하나까지 많은 디테일에서 당시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고 결국 이러한 사소함이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며 특별한 이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쓸 수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라던 바우하우스의 철학은 현재도 유효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모두를 위한 평등한 디자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다시금 데사우를 찾고 싶은 이유다.


1 마이스터 하우스에는 당시의 의자, 테이블, 스탠드 등 바우하우스의 정신과 조형성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 제품을 두루 만날 수 있다.
2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공방.


공간 디자이너 백종환
2005년 국민대학교 공간 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2005년부터 10년 동안 어소시에이트에서 근무했고 2015년 WGNB를 설립했다. WGNB는 “같은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다”를 모토로 브랜드와 사람을 담는 좋은 공기가 머무는 공간을 지향한다. WGNB가 만든 주요 공간으로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현빈 집을 비롯해 교보문고, 엔드피스, 덱스터 스튜디오, 카카오 프렌즈 스토어, 써밋 갤러리, 준지 플래그십 스토어 등이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JCD 디자인어워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바 있다. 2018년에는 FRAME 어워드를 비롯해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고상인 골드를 받았으며, 독일 디자인위원회가 주최하는 아이코닉 어워드에서 ‘2018 올해의 스튜디오’상을 수상했다.

Editor홍지은

Photographer백종환(WGNB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