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공예가 박선민 기타 June, 2020 다양한 소재의 조합이 시선을 끌고 본 적 없는 실루엣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버려진 유리병을 활용해 독특한 감성을 곁들인 오브제를 선보이는 박선민 작가의 작품 이야기다. 폐유리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그를 만나고 왔다.

수거하고, 자르고, 맞추고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물건이 그 후에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지. 여기, 버려진 유리병에 두 번째 숨결을 불어넣는 공예가가 있다. 업사이클링 공예의 선두 주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는 박선민 작가가 그 주인공. 그는 ‘리:보틀(Re:bottle)’ 프로젝트를 통해 작업의 80% 정도를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선보이는데 유니크한 형태의 오브제부터 실생활에서 널리 쓸 수 있는 테이블웨어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유리 가공법 중 ‘연마 기법’을 주로 활용한다. 컬러가 다른 여러 개의 병을 분할하고 잘린 단면을 7~8차례 연마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 마치 레고 블록처럼 크기에 맞추어 여러 병 조각을 조합하면 비로소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 탄생한다.
“병 본연의 형태를 관찰하고 특징을 부각해 새로운 쓰임을 주려 해요. 버려진 유리병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성격의 내용물을 담을 수 있도록 형태와 역할을 완전하게 변형하는 거죠.”
박선민 작가는 2014년 우연히 참여했던 전시를 계기로 업사이클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바다 쓰레기를 소재로 한 전시였는데 그때부터 환경에 관심을 갖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작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리:보틀 프로젝트의 일환인 ‘리:엔티크 시리즈’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스타상품개발 사업으로 개발한 라인이다. 병의 주입구 부분을 잘라 잔이나 디저트 볼, 화병 같은 생활 오브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 와인병이나 사케병 등 많이 수거되는 병에서 추출한 세 가지 컬러로 포인트를 살린 것이 특징인데 표면을 무광 처리해 유리의 색다른 질감을 선보였다. 박선민 작가는 업사이클링 작품 이외에도 다양한 유리 공예 기법을 활용한 생활 공예품을 만들고 있다.


1 박선민 작가는 한 번 사용 후 버려진 유리병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재구성해 다른 쓰임을 부여하는 일을 작가만의 특권으로 여긴다. 단순히 재활용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그가 터득한 기술과 감각을 곁들이기 때문. 기존의 형태를 유추하기 어려운 작업 결과물을 마주할 때 그는 뿌듯함을 느낀다.
2 신사동에 위치한 플레이스1-3에서 열렸던 박선민 작가의 전시. 그의 초기작부터 최신 작품까지 아카이빙 형태로 선보였다.



믹스 매치 그리고 조화
박선민 작가는 학부 시절 금속과 목공예를 전공한 경험 덕분에 유리를 다른 소재와 믹스 매치하는 작업에 능숙하다. 적재적소에 세라믹이나 금속을 유리와 조합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그가 본격적으로 유리를 다루기 시작한 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그전에는 유리 공예를 가르쳐주는 공방에 다녔는데 이때 알록달록한 유리 막대의 색감에 매료되었다고. 대학원에서는 블로잉, 퓨징, 캐스팅, 래미네이팅, 콜드 워킹 등 여러 유리 기법을 습득하고 졸업 후에는 워킹 홀리데이 명목으로 호주에 가서 다양한 작업 및 전시 활동을 했다. 이 밖에도 2년간의 직장 생활과 한국도자재단에서의 레지던시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지금은 선배와 함께 쓰는 이천의 작업실에서 작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특성상 ‘조화’는 중요한 포인트다. 색과 모양이 제각각인 폐유리병을 얼마나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주는 느낌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는 작업에 앞서 일상 속 다양한 순간에서 영감을 얻는다. “저 멀리 산의 능선을 보듯 유리병의 옆 라인을 오랫동안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 선이 이어져 어떤 식으로 작품을 표현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 있죠.”
인터뷰 내내 에디터는 그가 가진 사명감을 엿볼 수 있었다. 박선민 작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그 결과로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여러 전시를 진행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그는 앞으로 그에 못지않은 폭넓은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상품 개발을 위한 지원을 받게 되어 열 가공법을 활용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 그의 손에서 탄생하게 될 수많은 폐유리병의 두 번째 인생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3, 6 지난해부터 유리 표면에 무광 처리를 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차분한 인상을 주는 작품들을 작업하고 있다.
4 플레이스1-3에서는 전시 종료 후에도 박선민 작가의 ‘리:앤티크 시리즈’를 구매할 수 있다.
5 여러 병에서 얻은 조각을 조합하는 일은 저마다 성격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는 모습을 닮았다고 박선민 작가는 말한다.

Editor오하림

Photographer오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