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빌딩이 맵다 기타 January, 2020 임대와 개발에도 트렌드가 있다. 경기 불황속에서도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에는 작지만 개성 있는 소규모 빌딩이 속속 등장한다. 꾸준한 투자 대상으로 오히려 몸값을 올리고 있는 꼬마빌딩의 건축 및 공간 디자인 트렌드를 짚어보았다.

건물이 복지인 시대다. 현대 직장인에게는 어떤 건물에 오피스가 입주했는가가 행복의 요인 나아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 중 반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최근 창업가나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강남권역(GBD)에 새로 지은 깔끔하게 디자인된 꼬마빌딩으로 수요가 몰리는 배경이다.



꼬마의 성장기
꼬마빌딩은 수익형 부동산으로 각광받으며 꾸준히 관심받아왔다. 부동산 시장의 큰 축은 의심의 여지없이 아파트. 이는 하나의 주식 시장처럼 매매가 가능한 환금성이 높은 영역이다. 꼬마빌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형 건물은 기관이나 기업 거래 위주로 돌아가지만 개인이 독립적으로 투자 가능해 접근성이 높기 때문. 소위 꼬마빌딩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빌딩은 땅 면적이 330m²(100평 내외), 건물 층수는 5층 내외의 근린생활시설 건물을 가리킨다. 최근 상경투자(지방 투자자가 서울 강남 빌딩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현상을 빗댄말)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인기는 기하급수적이다. 지가 상승의 핵심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남다른 디자인의 ‘잘생긴’ 모습과 공간을 채운 ‘콘텐츠’. 경기 둔화와 실업률 증가로 국내 오피스 시장은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위기이자 곧 기회다. 경기가 좋을 때는 임대 시장에서 하드웨어가 매우 중요한 개발 가치를 보였지만, 요즘 같은 실수요 콘텐츠 시장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주효하다. 물론 건물주 입장에서 이러한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 엄밀히 말하면 운영이라는 더 큰산이 기다리고 있다. 꼬마빌딩이라고 다르지 않다. 스토리가 있는가, 집객 거점 요소를 심었는가 등을 살피며 끊임없는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건물주 따로, 운영자 따로 건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실험이 한창이다. 일례로 개개인에 맞춘 워킹 스페이스 ‘미플레이스’는 트렌드 관련 양질의 전문 정보를 큐레이션해 제공한다. 쌓여 있는 정보가 아니라 정제된 최신 정보를 공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합 공간이다. 위층은 공유 오피스 공간이며 아래층 라운지에서는 입주사의 미팅을 포함해 특별히 큐레이션한 트렌드 정보를 열람하고자 방문하는 근처 직장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간을 드나드는 참신한 아이디어 뱅크를 대상으로 에인절 투자자들을 초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Angel&Beer 파티’와 같은 콘텐츠는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 플러스알파 역할을 한다.


1 열매나눔재단의 로비. 33m²(약 10평) 남짓한 단조롭고 작은 공간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생기를 머금은 매력적인 빌딩으로 탈바꿈했다.
2 정제된 트렌드 정보를 큐레이션해 제공해주는 미플레이스. 지하 1층은 복합 공간, 1층은 카페와 트렌디한 런드리룸이 있고 2층은 트렌드 정보 열람이 가능한 라운지, 3·4층은 스타트업과 1인 프리랜서를 위한 오피스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멀티 페르소나
작을수록 존재감을 뿜어내는 꼬마빌딩은 디자인에서도 조금 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 중요한 점은 디자인에 집중한 나머지 너무 튀고자하기보다 범용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포인트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다. 개성에만 치우치다 보면 되레 건물의 가치를 저해하는 요소로 둔갑할 수 있다.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내는 재주도 필요하다. 최근 신축되는 꼬마빌딩의 면면을 살펴보면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는 게 특징이다. 작은 건물에 테라스나 루프톱까지 갖추어 다채로움을 양보하지 않는다. 또 하나,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 중 하나가 층고다. 용적률에 관한 이슈가 있지만 답답함을 배가하지 않도록 최소 3m 이상의 층고 확보가 중요하다. 꼬마빌딩의 숙명인 면적의 한계를 뛰어넘어 개방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건물 중앙에 중정을 배치하는 과감함도 서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개구부 배치다. 꼬마빌딩 대부분은 이면도로에 위치하기에 옆 건물과 가깝게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조권 계획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절대적으로 빛을 끌어들일 수 있는 묘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리창을 활용한 개구부 배치를 잘해야 하는데, 개방성만을 고려해 너무 많이 설치하면 내부 공간 활용의 효용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경험 많은 설계자의 노하우가 필요한 순간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은 꼬마빌딩이지만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난제를 극복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주차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워낙 작은 부지에 위치한 건물이기에 주차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한 아이디어를 총동원할 만하다. 주차 공간을 안내해주는 앱 서비스나 주변 주차장과 연계한 공유 주차장 시스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동의 라스트 마일을 고려해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한다면 솟아날 구멍은 적지 않다. 역세권을 넘어 ‘숲세권’, ‘스세권’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세상이다. 잘 지은 꼬마빌딩은 상권 특화의 묘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비단 저금리 시대 투자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생활 속 공간의 다채로운 모험과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된다.


3 마포 엄지척 빌딩. 엄지척 빌딩은 역 L자로 메인 도로에 접한 좁은 땅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꼬마빌딩으로 건폐율과 용적률은 확보하면서 임대 면적은 최대화하기 위한 노력이 디자인에 잘 녹아 있다.
4 김영아 건축사사무소가 최근 종로에 신축한 SWNA 사옥. 동서로 길쭉한 직사각형 땅에 연면적 396m²(120평)의 작은 건물이지만 충분히 웅장하고 단단한 인상을 준다. 다양한 도시 풍경을 담을 수 있는 통창을 적재적소에 활용했으며 각 코너는 작은 전시 공간, 휴식 공간으로 꾸미고 넓은 계단실로 방문자를 반갑게 맞는다.



안지용 건축가는
매니페스토 디자인랩의 안지용 대표는 명동의 M 플라자, 코엑스 메가박스의 공간과 브랜딩 리뉴얼, 삼성+하만(HARMAN) AV 공간 기획, 남산타워 리뉴얼 기획, 복합쇼핑몰 동춘175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리뉴얼한 건물의 가치가 상승하고 새롭게 기획한 공간이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상공간 전문 아키텍트로 자리매김했다. 뉴욕에서 활동했을 당시 미국건축가협회 디자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실력파로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3년 연속 한국건축가협회 100인의 건축가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Red dot, iF, IDEA의 디자인상을 모두 수상했다.

이향은 교수는
UX 트렌드와 사용자 심리를 연구하는 성신여자대학교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2009년부터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와 함께 트렌드를 연구하며 <트렌드코리아 2011>부터 <트렌드코리아 2020>까지 총 10권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2012년 서울대학교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향은 교수는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어워드인 독일 iF Design Award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교육 외에도 디자인과 소비 문화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대유 위니아 등 기업들의 디자인 경영 컨설팅과 자문, 혁신 제품 콘셉트 개발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ditor홍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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