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크리에이터 12인의 공간 - PART ③ 기타 December, 2019 공간에는 머무는 이의 취향과 감각이 오롯이 새겨진다. 성문이나 지문처럼 고유한 인장이 찍히게 마련. 한 해의 끝자락, 남다른 스타일과 철학으로 주목받는 리빙&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이상적 공간 연출에 관한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 여기 있다.

과감하지만 차분하게
디플로어 배지현



매거진은 물론이거니와 유명 브랜드의 광고, 행사 등의 스타일링을 맡으며 리빙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있는 ‘디플로어’ 배지현 스타일리스트. 방배동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그녀의 작업실을 찾았다. 영감이 탄생하는 이곳에 들어서자 캐주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늘 물건과 함께하기 때문에 특별한 느낌보다는 언제든 정리할 공간이 필요했어요. 공간을 나누는 벽조차도 수납을 위해 무언가를 걸고 뗄 수 있도록 OSB 보드로 마감했죠.”

수많은 가구와 소품으로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내는 스타일리스트의 공간이 이토록 소박하다니. 다양한 디자인 서적부터 추억이 담긴 사진과 여행을 하며 수집한 전리품, 아기자기한 피겨와 오브제 등으로 가득 찬 공간은 작업실이 아닌 마치 그녀의 취향이 담긴 방 같았다.

“요즘은 하나만 두어도 분위기 연출에 큰 역할을 하는 조형적인 디자인이나 생명력을 가진 듯한 디자인에 눈길이 가요.”

그녀의 최근 관심사를 짐작하게 하는 유니크한 오브제를 선반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을 보내는 업무 테이블 뒤쪽은 빈티지한 거울을 비롯해 두서없이 붙여놓은 그림과 사진, 소품으로 사용하는 탈 등 손때 묻은 아이템이 모여 마리아주를 이룬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코지’한 공간이란 바로 이런 곳 아닐까. @d.floor_stylist_workroom


좋아하는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베이스와 성수동에 있는 굿즈 숍 ‘오르에르’에서 찾은 손가락 오브제, 피숀에서 구입한 얼굴 모양 베이스까지. 모두 아끼는 아이템이다.


층마다 특징이 있는 선반. 맨 꼭대기에는 오래전부터 함께한 동물 피겨. 그 아래엔 애정이 담긴 다양한 오브제, 마지막 1층에는 디자인 서적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


1, 3 작은 벨이 달려 있는 풍경 모빌과 손으로 서툴게 그린 듯한 그림지도는 2012년 작업실을 열었을 때 받은 선물. 작업실을 처음 갖게 된 그때의 행복했던 기억이 담겨 있다.
2 푸드, 가구 디자인, 아트워크 등 즐겨 보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서적을 꽂아둔 벽 선반.
4 태국 공사관에서 주최하는 디자인 전시 준비로 태국에 갔을 때 구입한 도자기 인형. 팔과 다리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독특한 형태가 매력적이다.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이서 윤이서


작업실과 분리한 프라이빗 공간은 은은한 핑크 톤의 페인트를 발라 화사한 분위기를 더했다. 가구는 화이트와 블랙 컬러의 미니멀한 디자인만을 들여 더욱 세련된 공간을 완성했다.


사람 냄새나는 공간이란 과연 이런 모습일까 싶다. 작은 오브제까지도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손끝이 닿아있는 곳. 윤이서 디자이너의 작업실이자 집이 그러했다. 각각의 아이템이 마치 처음부터 제자리에 있는 양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에 머무름마저도 편하게 느껴졌다. 특히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브제들 역시 억지스럽게 꾸미지 않아도 존재만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듯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직접 재배해 만든 따뜻한 작두콩 차를 볼이 넓은 찻잔에 내어주었는데 그조차도 공간과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같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상업 공간이나 의뢰받은 공간의 작업은 콘셉트를 잡거나 또는 정해진 테마에 맞춰 저만의 스타일로 풀어내곤 하죠. 하지만 개인 공간만큼은 어떠한 스타일을 정해놓기보다 저에게 속한 것들을 저만의 방법으로 배치하면서 즐기는 것. 이게 제 스타일링법이에요.” 오랜 시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그녀는 라이프스타일 편집숍 ‘이서’, 공예 브랜드 ‘이서라이브’ 등을 운영하며 전반적인 리빙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그녀의 공간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건 자연 소재의 오브제, 그리고 직접 손으로 빚거나 만든 핸드크래프트의 어울림. 손으로 만드는 공예를 좋아하는 그녀의 취미 생활이 한몫했다. 특히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투명한 유리 오브제는 모두 그녀의 손길이 닿은 작품. 15년 전부터 한번 마시고 버리기 아까운 공병을 모아왔는데 우연히 유리를 자르고 연마해주는 장인을 만나 그 방법을 배우고 직접 만들게 된 것이라고. 시간의 조각을 모으듯 그녀의 손을 거쳐 가치 있는 작품으로 탄생한 셈이다.


거실과 주방 사이의 중심 공간. 멋스러운 패턴의 그레이 벽에 골드 메탈 장식의 선반을 걸고 밝은 우드 톤의 가구를 들여 이색적인 분위기가 난다. 선반 위 유리 오브제는 모두 윤이서 디자이너의 작품.


1 15년 전부터 무늬가 있는 공병을 모았다. 직접 유리 조각을 자르고 이어 붙여 새로운 형태의 오브제로 만들었다.
2 작업실의 타공 벽 건너 바라보이는 침실. 다른 컬러 톤으로 벽을 칠해 재미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3 크래프트 오브제를 좋아하는 윤이서 디자이너의 취향이 담긴 그릇. 은은한 컬러가 자투리 공간의 멋을 살려준다.
4 우드 소재의 세면장 위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산 모양의 거울이 돋보인다.


좋은 공간의 조건, 나를 찾는 일
“유행이나 유명한 디자인을 좇기보다 내가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파악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른 시각으로 새로운 면면을 찾아내는 안목이 좋은 공간을 만드는 노하우라고 생각해요. 가령 작은 식물일지라도 주변 공간을 미니멀하게 만들어 대상이 돋보이게끔 할 수 있는 것이죠.” 윤이서 디자이너는 ‘가장 나다운 공간’이 멋진 스타일의 완성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 그녀는 ‘프장’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 마켓, 여행, 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아트와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며 공유하는 일을 시작했다. 더불어 함께하는 사람들과 내년 2월에 신당역 근처에 복합문화공간을 오픈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현재는 공예 클래스를 운영하고 <이서일상> 책을 마무리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윤이서 디자이너. 사람들의 가치 있는 삶을 스타일링해주기 위해 그녀의 고민이 깊어지는 듯하다. @yyiseo


1 침실 한쪽 벽면에는 한국 정서가 느껴지는 작품을 걸고 그 밑에 한지를 씌운 선반형 조명을 두어 운치를 더했다.
2 침실 한쪽 타공 벽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끼웠다. 빛이 들어올 때면 오래된 피아노와 벽의 거울 장식으로 다채로운 컬러의 빛이 퍼져 오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3 서재 겸 작업 공간. 앞쪽의 비슬리 캐비닛과 앤티크한 느낌의 우드 가구가 정겹다. 여닫이문으로 침실과의 경계를 주었다.



온기에 집중하다
슬로우 파마씨 이구름, 정우성



식물을 처방해드립니다”. 플랜트 디자인 스튜디오 ‘슬로우 파마씨’의 슬로건이다. 식물을 활용해 실내외 공간은 물론 전시, 팝업 스토어 연출, 다양한 클래스까지 진행하고 있는 이구름, 정우성 대표의 작업실이자 쇼룸인 이곳은 사실 꽤 익숙한 공간이다. <까사리빙>과 플랜테리어 칼럼을 3개월 동안 함께 진행한 까닭에 한 달에 두 번씩 출근 도장을 찍었던 1층에 들어서니 포근한 초록 기운을 내뿜는 식물들이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오래된 약국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간접 조명을 활용해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거기에 어두운 톤의 가구로 빈티지함을 더했지요.”

공간 연출에서 가구 선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이구름 대표. 오래된 전축, 빈티지한 수납장 등 세월의 흔적이 담긴 가구는 물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약병, 비커 등 과학 기기에서 그녀의 확고한 취향이 드러난다. 식물을 추천해주는 공간인 만큼 사람 키만 한 커다란 선인장부터 식물을 약품 처리해 보존한 시그너처 아이템 식물 표본, 풍성하게 잎이 뻗어나온 행잉 플랜트까지 다양한 형태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1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등장한다. 깨끗한 화이트 벽을 바탕으로 창문틀 군데군데 놓은 마른 가지, 천장에 매단 드라이플라워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사무실 겸 미팅 룸이다. 중앙에 놓은 큰 테이블에서는 회의를 진행하고 간단한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고. 상수역 오래된 주택가 골목, 소담한 약국에서 건네는 초록빛 위로가 더욱더 퍼져 나가길 기대해본다. @slow_pharmacy


높은 천장과 깨끗한 화이트 벽이 돋보이는 2층 공간. 식물 표본을 제작하는 등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큼지막한 테이블이 공간의 주인공. 우드 특유의 느낌이 따듯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1 테라리엄, 고스트 우드, 작은 오브제 등으로 장식한 선반. 다양한 소품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식물 연구소의 캐비닛을 구경하는 듯한 재미가 있다.
2 쇼룸 가장 안쪽 벽 선반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종류의 화분을 두었다. 식물마다 고유의 특징이 있기에 그에 맞는 화분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3 작은 화분을 모아놓은 진열장에 오래된 책과 말린 잎을 넣은 앤티크 액자 등을 함께 두어 빈티지한 느낌을 더했다.
4 이구름 대표가 가장 애착이 가는 아이템 중 하나로 꼽은 나비 표본. 해외 출장 때마다 빈티지 숍을 방문해 하나씩 모았다. 공간을 연출할 때도 즐겨 사용한다.


쇼룸을 음악으로 채워주는 전축과 옛 약국에서 볼 수 있던 장식장. 시그너처 아이템인 식물 표본과 테라리엄으로 가득 채웠다.

Editor홍지은, 김소현, 문소희, 오하림

Photographer이종근, 문성진, 이수연, 오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