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크리에이터 12인의 공간 - PART ① 기타 December, 2019 공간에는 머무는 이의 취향과 감각이 오롯이 새겨진다. 성문이나 지문처럼 고유한 인장이 찍히게 마련. 한 해의 끝자락, 남다른 스타일과 철학으로 주목받는 리빙&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의 보금자리를 찾았다. 이상적 공간 연출에 관한 가장 현실적인 대답이 여기 있다.

질감과 형태, 날것의 형이하학
엘쎄드지 강정선


얼마 전 새로운 식구가 된 반려견 수리와 함께 포즈를 취한 강정선 대표. 작업실 한쪽 벽은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트롱프뢰유 기법의 마틴 마르지엘라 패턴 프린트를 활용해 유니크하게 연출했다.


강정선 대표의 사무실 겸 작업실은 사전적으로 명명하기에는 어쩐지 미안한 구석이 있다. 노출 콘크리트를 그대로 살린 채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채운 공간은 하나의 갤러리이자 박물관, 아카이브에 가까워서다. 어째서 ‘엘쎄드지(L’-C de J, L’appartement - curiosit?s de Jungsun)’라 이름 붙였는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덩어리감이 있는 물성에 흥미를 느껴요. 두께와 무게, 뭉뚱그려진 모서리, 거기에서 느껴지는 텍스처까지.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거친 듯 덜 가공된 것이 품은 오라(Aura)가 있지요.”

두툼한 나무와 돌, 코르크와 유리, 금속에 이르기까지 그러고 보니 곳곳에 자리한 가구에서는 하나같이 묵직한 볼륨감이 느껴진다. 그녀의 말마따나 오브제 혹은 조각으로도 손색없는 작품인 셈. 다른 게 있다면 ‘목적’과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것 정도다.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강 대표는 특유의 럭셔리하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후에는 브랜드의 공간 기획과 주거까지 활발하게 넘나들고 있는데 얼마 전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론칭을 기념해 총 6개의 페르소나로 연출한 쇼룸 역시 그녀의 손을 거쳤다.

“디터 람스의 다큐멘터리 <람스(Rams)>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매너리즘의 해법을 묻자 그는 ‘좋은 사람들과 협업’이라 이야기하지요. 어쩌면 주변에 함께하는 ‘창조자’야말로 입체적이고 풍성한 결과물을 만드는 영감 자체인지도 몰라요.”

물론 꼭 사수해야 할 커다란 맥락은 지난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서라도 지킨다.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수하고 디렉팅과 실행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고려도 필요하다. 하지만 와중에도 내가 원하고 사랑하는 것을 충분히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비정형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크리스토프 델코트, 원시적 접근의 아파라투스 스튜디오, 파예 투굿, 크리스티앙 리에그르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이물감 없이 공간에 들이는 시도를 이어가는 이유다.


1 크리스탈리아 장식장 위에 영감을 주는 오브제를 하나둘 그러모아 완성한 작업실 한쪽.
2 매끈하게 마감한 DK3 테이블 위에 놓은 투명한 문진이 보석처럼 빛난다. 과감하고 기하학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그녀의 감각이 엿보인다.
3 강 대표의 작업실 겸 미팅 룸. 그녀는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둠으로써 영감을 담금질한다. 지금은단종된 코발트블루 빈티지 임스 체어, 마이클 아나스타시에이즈가 디자인한 플로스 조명이 하나의 조각품처럼 존재감을 드러낸다.


본질로서의 럭셔리
강 대표는 얼마 전 이니스프리 제주 하우스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마쳤다. 그녀의 스타일과 어울릴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은 공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되고 동시에 브랜드의 철학을 공간 안에서 유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편리를 위해 규격화된 세상에서 토속적이고 덜 가공된 무엇은 대체 불가한 힘을 갖고 있어요. 로컬의 다양한 형태가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이를테면 글로벌 리조트 체인인 아만그룹의 경우 전 세계의 지역색을 반영해 단 한 군데도 똑같은 지점이 없지요. 숲 한가운데, 절벽 끝, 바닷가 마을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그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에너지가 존재하고 그게 경쟁력이겠지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감 염색부터 바구니, 토속 옹기 등 제주의 민속품이나 전통 가옥에서 많은 영감을 추출했다는 그녀. 끊임없이 비행기에 올라 이방인을 자처하는 것도 실은 여행과 타국에서의 체험이 자양분이 되어서다. 본질과 원형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는 앞으로도 엘쎄드지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테다.


1 시쳇말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이야말로 그녀의 시그너처라 말할 수 있을까. 서용선 작가의 드로잉, 소반과 기와같이 서로 다른 컬러와 물성의 오브제를 모아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스러운 코지 공간을 완성했다.
2 같은 소재의 다양한 실루엣을 리듬감 있게 배치해 심플하면서도 입체적인 스타일링을 구현하는 강대표의 감각이 묻어나는 공간.
3 작업실에서 바라본 강 대표의 사무실. 작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2개의 공간이 마주 보고 자리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통 지장조차 그녀의 공간에서는 그럴듯한 오브제로 거듭난다.
4 리네로제의 강렬한 레드 컬러 플럼 소파가 드라마틱함을 더하는 사무실.


“숨 고르기가 절실한 바쁜 한 해였어요. 어쩌다 보니 주거 프로젝트를 많이 하지 못했는데 제 개인일정까지 맞춰 기다려주신 클라이언트도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소매를 걷어붙이기 전에 아무래도 짐부터 싸야겠지요?(웃음)”

편하고 아름답고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무엇과의 동거. 모두의 바람이지만 결국 그 가치란 저마다 다르게 마련이다. 누군가의 눈과 손을 빌려 같은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래서 어렵지만 그렇기에 특별하다. @_jungsun


통창 너머의 풍경이 액자처럼 걸려 있는 작업실 겸 미팅 룸. 좋아하는 가구를 마치 오브제처럼 툭툭 놓았는데 그조차 통일된 톤으로 연결된다. 조지 나카시마의 라운지 체어와 네덜란드에서 공수한 스툴, 그레이 컬러의 데이베드가 의도적으로 전시한 하나의 설치 조각 같다.



프렌치와 클래식의 마리아주
마젠타 권순복



남산 소월길 작은 언덕 중턱에 공간을 디렉팅하는 ‘마젠타’가 자리하고 있다. 프렌치 모던 스타일을 기반으로 주거, 상업 공간의 시공 및 스타일링을 진행하는 권순복 대표는 이곳을 쇼룸 겸 작업실로 사용한다. “베르샤유 궁전 옆 별궁 트리아농을 모티프로 18세기 로코코 양식을 공간에 녹여냈어요. 특히 몰딩은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트리아농의 디테일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했지요.” 권순복 대표가 공간 디렉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 몰딩 디자인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벽면과 문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천장에 힘을 줄 때도 주로 활용한다고.

크림 화이트 컬러를 베이스로 전체적으로 클래식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연출한 공간은 리빙 룸, 다이닝 룸, 오피스 등 섹션 별로 나누어 꾸몄으며 묵직한 중심을 잡아주는 가구와 함께 조화롭게 어울리는 리빙 아이템 또한 눈길을 끌었다. 프린트 접시를 벽 장식으로 사용하거나 세라믹 테이블웨어에 꽃을 담아 완성한 센터피스 등에서 프렌치 데코 스타일링 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스타일링을 완성할 때 중점을 두는 건 단연 컬러. “컬러는 적절히 믹스해 사용하면 공간에 포인트를 주고 때로는 전체적인 흐름을 좌우하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컬러 선택에 신경 쓰고 있어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이곳은 특별한 공간으로도 변신한다. 18~19세기 파리에서 유행한 살롱 문화를 재표방하며 각계각층의 사람이 모여 문화, 예술을 공유하는 ‘살롱 드 마젠타’를 열고 있다. @magenta_kwon_official


파리 더콘란샵에서 구입한 대리석 테이블 위에 바카라의 잔과 베르나르도의 플레이트로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마젠타의 시그너처 컬러 중 하나인 네이비를 적용한 몰딩 도어가 눈길을 끈다.


1 모던 프렌치 스타일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테이블 세팅. 보라색 글라스와 클래식한 테이블웨어가 어우러져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2 프린트가 있는 플레이트를 벽 장식에 활용했다. 파리에서 직접 구입한 조세핀의 장미가 그려진 액자를 함께 배치했다.
3 프랑스에서 직접 제작하는 벨벳 패널. 프랑스 문의 형태를 그대로 본떠 실제 나무 문 같다. 협탁 위에 놓은 실버 티포트는 그동안 컬렉팅한 제품.
4 주로 세라믹 테이블웨어와 티포트, 그릇을 컬렉팅하는 권순복 대표는 제품을 꽃과 함께 스타일링하는 것을 즐긴다.


파리 베르사유 궁전 옆 별궁 트리아농의 로코코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중앙에는 실제 프랑스 루아르 지역 슈농소성에 살았던 여인 중 한 명의 모습이 담긴 유화를 걸었다.



다양성의 명민한 밸런스
호스팅하우스 김석진×장호석


(왼쪽부터) 뉴욕이라는 공통분모를 시작으로 공간 디자인과 스타일링을 선보이고 있는 장호석 디렉터와 김석진 대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장호석 디렉터는 평면과 입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혜안을 지녔고, 글로벌 패션 브랜드의 마케팅팀에 몸담았던 김석진 대표는 기민하게 트렌드를 캐치하면서도 호스팅하우스만의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호스팅하우스만의 고유한 색깔은 무엇일까?” 묻고는 바로 우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퍽 닮았기 때문이다. 하기야 나도 모르는 나란 존재에 대해 더 정확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이는 타인인지도 모를 일. 우선 옆에서 바라본 호스팅하우스부터 복기해보자. 지난해 여름 론칭한 후 리빙&라이프스타일 업계 안팎으로 주목할 만한 행보를 이어온 둘은 이제 핫하다는 곳에서는 이름 석 자가 빠지지 않는다. 리빙 페어의 콘셉트 부스 디자인부터 파넬 쇼룸 리모델링, 제품 디자인 협업에 이르기까지 지난 2년 동안 그들의 손을 거친 굵직한 프로젝트도 여럿. 뉴욕의 다양성을 모티프로 한 공간 디자인과 스타일링은 신선하며 입체적이고 동시에 ‘어렵지’ 않다. 성수동에 자리한 보금자리에서는 이러한 결이 더욱 두드러진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왼편에 호스팅하우스만의 취향과 감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쇼룸이, 맞은편에는 카페&바가 자리하고 몇 걸음 옮기면 루프톱에 다다른다. 800여 개의 언어가 혼재한다는 뉴욕처럼 쇼룸과 바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 한데 어우러진다.

“얼마 전 쇼룸을 새롭게 단장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거주 공간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호텔’에서의 하룻밤을 재현했지요. 가벽 대신 직접 디자인한 파티션으로 답답하지 않게 공간을 구획하고 여러 컬러를 쓰지 않으면서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했어요.” 그들이 지향하는 다양성의 스펙트럼은 브랜드와의 협업으로도 이어진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도 크리에이티브 랩, 꼬또네, 더멘션, 틸테이블 등과 함께했는데 그들의 다채로운 아이템을 한 공간에 자연스레 풀어낸점이 흥미롭다. 흩어진 것들을 솜씨 좋게 꿰고 엮어 빚어내는 일관된 톤 앤 매너. 가까이에서 보나 멀리에서 보나 이질감 없이 하나로 모이는 유기적 공간 연출은 지금의 둘을 있게 한 호스팅하우스의 저력이다.


호텔의 그것처럼 한쪽에 집무 공간을 연출했다. 셀드 테이블과 이브 체어는 모두 까시나.


현미경과 망원경
“무엇이 먼저랄 건 없어요. 공간이라는 바탕에 가구를 베리에이션해보는 것도 좋고 반대로 가구에서 공간으로 확장 해나가는 것도 방법이지요. 여기에 향이나 조도와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무정형의 것을 고려하면 완성도가 더 높아 지겠지요. 호스팅하우스만의 차별점이라면 여기에 은근한 남성성을 부여한다는 점일 거예요. 의도하지 않은 볼드한 텍츠처나 굵직한 선의 중첩 따위로요.” 부분에서 전체로 다시 전부에서 일부로 넘나드는 스타일링은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호스팅하우스만의 취향과도 맞닿아 있다. 길이 결코 하나이지 않은 것처럼, 현미경과 망원경을 오가는 자유로운 시선이 마침내 유연하고 유기적인 스타일을 빚어낸다.

“글쎄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사실 어떻게 살까예요. 살다 보면 그저 ‘살아지’잖아요. 정작 중요한 건 어떻게(How)죠.” 가속도가 붙은 삶은 액셀 없이도 제멋대로 속도를 높일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잠언을 곱씹게 되는 이유다.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는 태도는 결국 어디에, 어떤 모습의 나로 살아야 하는지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그리하여 얻은 결론은 이렇다. 공간을 이루는 요소는 여럿이지만 결국 사용자의 태도가 가장 짙게 묻어날 수밖에 없는 거라고. 현대적이고 세련되었지만 마냥 차갑게 다가오지 않는 호스팅하우스 스타일처럼. @hostinghouse


1 새롭게 연출한 호텔의 메인 룸. 침대는 크리에이티브랩에서 전개하는 솜너스, 베딩은 꼬또네. 벽에는 장호석 디렉터가 직접 드로잉한 작품을 걸어 톤 앤 매너를 통일했다.
2 쇼룸에서는 직접 큐레이션한 상품을 선보이는가 하면 다양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3, 4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빈티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


쇼룸은 과하지 않은 웨인스코팅으로 고급스럽게 마감하고 아치형 선반에 조너선 애들러의 세라믹 오브제처럼 평소 좋아하는 소품과 큐레이션한 제품을 함께 전시해두었다. 짙은 자줏빛 컬러와 청록색이 우아한 대비를 이루면서도 직선과 곡선의 배치가 남다른 기운을 더해준다. 메리디아니 소파는 더멘션.

Editor홍지은, 김소현, 문소희, 오하림

Photographer이종근, 문성진, 이수연, 오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