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기타 November, 2018 ‘번듯하게’가 아니라 ‘꿋꿋하게’ 써 내려간 글이다. 편의점 점주의 시선으로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매일 갑니다, 편의점>에는 공감이 이만큼, 위로와 웃음도 이만큼. 소박한 이야기가 주는 크나큰 울림이다.

익살스러운 일러스트가 삽입되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시시콜콜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은 심각한 얼굴을 하거나 무거운 척하지 않는다. 6년 차 편의점 주인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야기는 단숨에 술술 읽힌다. 동업자부터 단골, 민폐 고객까지 편의점을 오가는 ‘사람’과의 에피소드는 작가 특유의 오지랖과 아재 개그를 만나 생동한다. 컵라면 8개에 뜨거운 물을 부어 가져가는 어느 부하 직원의 애환이 담겨 있고, 매일같이 이제 곧 사라질 피자 젤리를 사가는 꼬마 손님에게 “사실은 버거 젤리가 더 맛있어”라고 귀띔하는 에피소드에도 마음이 간다. 애써 맞춰놓은 줄을 망가뜨리며 뒤에 있는 물건을 꺼내는 손님을 겨냥한, 솔직한 작가의 속마음을 읽고 있노라면 핑글핑글 웃음이 난다. 1+1 상품의 숨겨진 비밀이나 진열대 위 상품들의 영토 전쟁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편의점 세상 또한 흥미롭다.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다른 누군가도 나와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는 풍경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공감은 어느 면에서 치유와 같다. 우리네 ‘오늘’이 꽤 소중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우리 모두 괜찮다’는 위안이 느껴진다. 평범한 일상이 책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다정한 관찰 그리고 성실한 기록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아버지가 편의점을 덜컥 계약하신 거예요. 당시 편의점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졌던 터라 ‘죽어도 내가 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도맡았지요(웃음). 평소 그저 일기 쓰듯 하루를 기록했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적어둔 메모를 편의점 점주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후속 편 요청 댓글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으로 ‘각잡고’ 쓰기 시작했어요.”
NGO에서 직장 생활을 한 뒤 중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했던 저자 봉달호. 어쩌다 보니 ‘편의점 작가’로 거듭났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계 공간이었던 편의점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서사가 펼쳐지는 무대배경이 되었다.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틈틈이 쓰고 또 썼다. 창고에서 라면을 정리하다 상자 뒷면에 끄적이거나, 냉장고에 음료수를 채워 넣다 휴대폰 메모장에 토닥이기도 했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상대하다가 영수증 빈 곳에 휘갈겨 쓰기도 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났다. 그동안 쓴 원고를 모아보니 꽤 도톰했다. ‘이런 글도 책이 될 수 있을까?’ 별 기대 없이 몇몇 출판사에 보냈다. <매일 갑니다, 편의점>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1 재치와 온기가 녹아든 이야기를 선사한 <매일 갑니다, 편의점>작가 봉달호.
2 생각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성실하게 기록한 메모들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우리 함께, 겨울부터 계절 나기
인터뷰를 위해 편의점을 찾은 날, 호빵기가 설치되었다. 편의점 풍경은 이렇게 정직하다. 실내 공간임에도 시간의 흐름이 또렷하다. 책의 챕터 또한 겨울-봄-여름-가을로 구성되어 각 계절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한데 왜 봄이 아니라 겨울부터 시작될까?
“겨울은 편의점 매출이 가장 적은 계절입니다. 힘든 계절부터 시작해서 차츰 매출이 상승하며 의욕이 샘솟는 봄 그리고 최대 성수기인 여름, 다시 겨울을 대비하며 ‘이겨내자’ 다짐하는 가을까지. 계절의 흐름을 나누고 싶었어요.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의 필명도 인생을 닮았다. 영화 <복면달호> 주인공 이름인 ‘봉달호’를 그대로 사용했는데, 록 가수를 꿈꾸던 주인공이 어쩌다 트로트 가수가 된 이야기가 자신과 닮아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그에게 편의점 점주는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했다. “지금은요? 아주 잘 어울리죠(웃음).” 뜻밖의 인생에도 근사한 반전이 숨어 있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냥 좋아서’ 씁니다
돌아보건대 식당을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장부에 매출과 함께 그날의 소회를 적곤 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자란 그가 어느 결엔가 펜을 들었고, 그에게 글쓰기란 곧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숭고한 행위가 되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그는 오늘도 메모를 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틈틈이 독자 후기를 찾아본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잠깐 스치는 사람도 결국 사연이 있고,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SNS에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누구다’라는 글귀를 곁들인 독서 후기를 봤습니다. 책을 보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다’는 이들의 메시지를 받으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사실 제가 ‘열심히 노력하자’는 맥락의 책을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럼에도 독자들이 그렇게 읽어준다면 참 고맙죠.”
일상의 소중함을 거창하게 설명하는 대신 차츰차츰 드러내고, 대놓고 응원하기보다 슬며시 위로를 건네는 봉달호. 이 가을, 책 한 권이 제법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그의 바람처럼 삶을 향한 자그마한 의지가 샘솟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ditor김주희

Photographer박혜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