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시간의 연금술 전체공간 August, 2019 사랑받는 상공간의 법칙은 따로 있을까? 변화무쌍한 상공간 트렌드의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시간을 디자인하는 법’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라는 애니메이션을 아는지? 개봉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는 타임리프(Time Leaf) 능력을 갖게 된 소녀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대상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하는 모습을 그린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 우리는 여기에 기회비용을 지불하기도 하고, 화폐가치로 환산해 소득을 얻기도 한다. 시간은 이제 공간을 디자인하는 최대 변수로까지 작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시공 일정이나 운영 시간이 아닌 사용자의 ‘체류 시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게 눈에 띄는 변화다.



시간을 디자인하는 건축가
영국 솔즈베리의 스톤헨지, 로마의 판테온, 독일 고딕 양식의 대성당, 근현대의 롱샹 교회까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빛의 건축으로 불린다는 점이다. 건축물의 면면은 건축가들이 꽤 오래전부터 태양을 연구해왔음을 몸소 보여준다. 하긴 우리는 태양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 등을 통해 비로소 건축물을 인지할 수 있지 않은가. 빛의 건축으로 유명한 루이스 칸은 “구조물은 빛 속의 디자인”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고, 김수근 선생 역시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빛은 비물질적인 시간을 가시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성격 때문에 우리는 같은 공간도 전혀 다르게 느끼게 마련이다. 많은 건축가가 시간의 흐름과 흔적을 표현하기 위해 외장재를 연구하고, 빛의 각도와 반사, 굴절까지 계산한 디테일한 디자인을 남긴 배경이다.

자연환경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하는 공간은 사용자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설계를 기본으로 한다. 사용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가 다르므로 같은 공간이라도 디자인해야 하는 요소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호텔을 비롯해 병원, 은행, 상공간, 오피스까지 특정 공간 안에서 어떠한 ‘활동’이 일어날지 시뮬레이션한 후 부합하는 서비스를 공간에 담아내야 한다. 서비스 디자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방법론인 고객 저니 맵(Customer Journey Map)을 떠올려보자. 이는 매장에서 ‘입장-탐색-체험 및 상담-구매-퇴장’으로 이어지는 고객의 구매 과정을 단위별로 구분해 행동과 감정 변화 등을 면밀히 관찰하며 사용자와의 터치 포인트를 관리하는 해법이다. 같은 맥락으로 공간 기획을 할 때도 물리적인 동선을 효율적으로 제안하는 것을 넘어 체험 동기를 유발하는 요소나 감성적 만족감을 주는 요소까지 함께 다루어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움직임을 만드는 일은 곧 그들이 보낼 시간을 미리 들여다보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2017년 11월에 아부다비에 개장한 루브르 박물관 분점.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은 빛을 가장 강력한 디자인 요소로 삼아 박물관을 기획·디자인했다.



진화하는 체류의 조건
1853년 마천루가 성행하던 미국에서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수고를 덜어준 최고의 발명품이 탄생했으니 오티스가 최초로 설계한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는 엄청난 성과와 함께 빠르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획기적인 기술이 당연해지자 점차 속도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멍하니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지루함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자투리 시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주인공이 바로 ‘거울’이다. 오티스사는 엘리베이터 내부에 거울을 설치함으로써 놀랍게도 지루함을 없애고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의 매무새를 다듬는 시간으로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거울이 자연스레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의 시간을 디자인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 머무는 상공간 역시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끼도록 기획해야 한다. 백화점에 창문이 없는 이유도, 에스컬레이터의 방향과 위치도 모두 고객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들어두기 위한 전략이지만 오늘날의 상공간 기획에는 이러한 매뉴얼을 넘어선 매력적인 혹은 친근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시간을 ‘아꼈다’와 ‘벌었다’는 엄밀히 다르다. 전자는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이고 후자는 기대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엑스트라 시간이 생겨난 것에 대한 만족감과 연결된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은 시간을 ‘아낀 것(Saving)’과 ‘번 것(Earning)’ 중 어떤 느낌을 갖게 하는 장치일까? 아꼈다기보다 한정된 조건 안에서 다른 행위를 할 수 있는 뜻밖의 기회가 생긴 것이므로 번 것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상공간 역시 기능적인 목표 달성으로 머무는 시간보다 감성적인 충족감으로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는 기획이 필요하다.



시간점유율을 높여라
단언컨대 이제 공간을 디자인하는 이라면 ‘시간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한다. 공간을 점유한 사용자가 ‘얼마나 체류하는가’와 ‘무엇을 하며 머무는가’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복합공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곳을 메울 사람들의 라이프사이클을 고려한 서비스를 제안했느냐, 다시 말해 그들의 시간을 함께 디자인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시공간’이라는 개념이 나왔듯 이제 공간을 디자인할 때에는 시간을 적정 단위로 나누어 사용자의 라이프사이클에 맞는 행위와 관심을 제안하는 시공간 디자인 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공간과 시간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고 했던 오래전 아인슈타인의 말 속에 성공적인 상공간 기획의 첫걸음이 담겨 있다.


중국 청두에 위치한 감각적인 서점 팡쒀(Fang Suo). 다채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담은 공간 기획을 인정받아 아시아 국가의 서점으로는 처음으로 런던의 북페어인 ‘LBF 인터내셔널 엑설런스 어워드 2019’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안지용 건축가는
매니페스토 디자인랩의 안지용 대표는 명동의 M플라자, 코엑스 메가박스의 공간과 브랜딩 리뉴얼, 삼성+하만(MARMAN) AV 공간 기획, 남산타워 리뉴얼 기획, 복합쇼핑몰 동춘175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리뉴얼한 건물의 가치가 상승하고 새롭게 기획한 공간이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상공간 전문 아키텍트로 자리매김했다. 뉴욕에서 활동했을 당시 미국건축가협회 디자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실력파로 한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3년 연속한국건축가협회 100인의 건축가로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Red dot, iF, IDEA의 디자인상을 모두 수상했다.

이향은 교수는
UX 트렌드와 사용자 심리를 연구하는 성신여자대학교 서비스디자인공학과 이향은 교수는 2009년부터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와 함께 트렌드를 연구하며 <트렌드코리아 2011>부터 <트렌드코리아 2019>까지 총 10권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2012년 서울대학교 디자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향은 교수는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 어워드인 독일 iF Design Award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교육 외에도 디자인과 소비 문화를 아우르는 통찰력을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대유 위니아 등 기업들의 디자인 경영 컨설팅과 자문, 혁신 제품 콘셉트 개발과 같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Editor홍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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