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일상의 공존 전체공간 January, 2019 한정된 컬러지만 힘이 있다. 단조로워 보이지만 강렬한 포인트가 된다. 집에 들어서면 통일감 없는 패턴과 컬러들이 어우러져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토록 자유로운 조화는 그녀의 개성을 대변하듯 새로운 공간을 이뤘다.

재치 있게 공간에 녹아든 예술
“평온함을 좋아해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예술을 하려면 발칙한 도전이 필요하죠.” 집주인 베아트리 트루사르디(Beatriz Trussardi)의 한마디로 집에 대한 표현이 모두 정리되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트루사르디를 운영해온 니콜라 트루사르디의 장녀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인 베아트리 트루사르디의 집은 곳곳에 그녀만의 리빙 철학이 담겨있다. 컨템퍼러리 아트에 초점을 맞춰 과거와 현재를 아트로 이어주는 것.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추구하던 예술과 문화를 홍보하기 위해 설립한 니콜라 트루사르디 폰다치오네(Nocola Trussardi Fondazione)를 운영하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예술을 일상생활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길 원했다. 그렇기에 모든 이가 예술을 쉽게 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순회하는 아트 전시’라는 콘셉트를 도입했다. 이는 뮤지엄이나 갤러리라는 한정된 곳이 아닌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그녀가 기획한 것 중 하나다.
베아트리 집에도 이러한 콘셉트를 적용했다. 밀라노의 랜드마크인 두오모 성당, 토레 벨라스카가 360도 스카이라인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실에 유니크한 컬러와 디자인이 돋보이는 가구를 한데 놓아 새로운 뷰를 완성한 것이 바로 그 예. 이처럼 확고한 의지와 위트 있는 발상이 개성 넘치는 그녀만의 공간을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집주인 베아트리 트루사르디가 가장 좋아하는 거실이다. 명화를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태피스트리는 미국 아티스트 아리아나 캐롤리의 작품, 도시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인 패턴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모렛의 러그가 상반된 느낌이지만 조화롭게 자리를 잡았다. 데이베드 위에 놓인 작품은 베니스 비엔날레 실버 라이온 수상자인 스웨덴 아티스트 나탈리에 유르베리의 작품.


1 베아트리는 자신이 직접 컬렉팅한 오브제를 집 안 곳곳에 둔다. 지오 폰티와 야요이 구사마 작품을 건 벽면 아래로 마우리치오 카텔란, 존 벅, 미셸 로페즈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놓았다.
2 니콜라 트루사르디 폰다치오네의 사장을 맡고 있는 아트디렉터 베아트리 트루사르디.



온전한 휴식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
베아트리 집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모든 공간에 적용한 큰 창문과 이를 통해 들어오는 풍부한 자연광이다. 그녀의 집을 디자인한 건축가 지오 폰티의 디자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구석진 곳이나 가시거리 밖으로 가려진 공간까지 온 집안에 자연스러운 빛이 고루 퍼지는 것. 그렇기에 그녀의 집은 한층 더 밝게 연출 가능하며 오브제마다 고유의 색감을 온전히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은 바로 거실. 그래서 베아트리와 그녀의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햇빛이 스며드는 큰 창가 앞에 놓은 소파에 앉아 있노라면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라고. 창 너머 내다보이는 공원과 밀라노의 경관도 한몫을 한다.
이런 베아트리의 집은 공간의 요소뿐만 아니라 이색적인 구획도 눈길을 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양 끝으로 길게 펼쳐지는 중앙 복도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런 독특한 공간 계획은 가족의 사적인 공간을 분리하는 동시에 창밖으로 보이는 뷰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가족의 주요 공간이자 손님을 맞이하는 거실은 동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맞닥뜨릴 수 있게 복도 끝에 두고, 복도를 따라 세워진 중앙 벽 너머에는 침실과 서재, 주방, 욕실 등 프라이빗한 공간을 배치했다.

1 거실은 미드센추리 스칸디나비안 가구와 컨템퍼러리 예술품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다. 알바 알토 체어 옆 사리넨의 커피 테이블 위로 마테오 치비크의 돔사이(Domsai) 선인장 화분을 놓았다.
2 야외 테라스와 연결되는 거실의 한쪽에는 TV를 놓아 엔터테인먼트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밝은 컬러와 유니크한 디자인의 가구를 선택했는데, TV 앞 테이블은 에마뉘엘 바블레드의 아트 디자인 피스인 ‘파소 도블(Paso Doble)’, 그 위의 조각은 이탈리아 건축가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작품이다.


벽면을 가득 메운 작품은 2009년 니콜라 트루사르디 폰다치오네에서 기획한 아티스트 타시타 딘의 필름 ‘스틸 라이프(Still Life)’로 정지된 영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 아래 빈티지 테이블 위에 놓은 익살스러운 조각은 마테오 치비크의 작품.



예술과의 경계를 허무는 일
현재 베아트리는 일의 영역을 확장해 육스(Yoox) 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 공간 육스닷컴에서 아트와 디자인을 큐레이팅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육스와 협업해 새로 선보이는 디자인 제품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있다. 이 또한 예술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는 방안을 모색하며 그녀가 기획한 프로젝트. 좀 더 대중이 디자이너들의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개인의 취향에 따라 컬렉터가 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그녀의 바람이 담긴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고민은 집과 일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예술 작품과 디자인 오브제가 가득한 공간은 공과 사의 구별이 무색할 정도로 차별이 없다. “모든 오브제는 그들만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어요. 이들은 때론 강렬한 영감을 전하기도 하고 업무적인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기도 하죠.” 그녀가 사적인 공간까지 예술 작품과 디자인 오브제를 들여와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예술이 공존하는 일상적인 공간, 이것이 바로 베아트리가 추구하는 삶일 테다.

곡선 형태의 다이닝 룸에는 큰 창 너머로 밀라노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캄파나 브라더스의 리미티드 에디션인 ‘에스퍼랑카(Esperan?a)’ 조명이 공간에 유쾌함을 더한다. 부드러운 공간의 형태에 맞춰 브루노 맛손의 타원형 다이닝 테이블을 두고, 노르딕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해 아이코닉 스칸디나비안 가구와 아트 피스를 배치했다.


1 경쾌한 컬러가 돋보이는 블랭킷은 미국 아티스트 롭 프루잇의 작품 ‘이주자의 움직임(Migration Moving)’으로 2019년 2월 육스닷컴을 통해 공개할 예정. 이를 포함해 40여 개의 컬렉션을 소개할 계획이다.
2 욕실은 평온한 바다를 콘셉트로 몸과 마음에 온전한 휴식을 전하는 차분한 베이지 톤의 컬러를 택했다.
3 다이닝 룸에 연결된 게스트 룸. 뉴욕에서 구입한 빈티지 캐비닛 옆으로 이탈리아 조각가 피에트로 콘사그라의 작품이 돋보인다. 앞쪽 벽면에 건 콜라주 포스터는 미국 아티스트 도로시 이아논의 작품으로 베아트리가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아티스트를 직접 만나 구매한 것이다.

Editor김소현

Photographer레이문(Moon Ray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