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공간의 마리아주 전체공간 November, 2018 맛에만 궁합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어떤 관계에서건 절묘한 균형은 시너지를 내게 마련. 공간이라고 다를까. 바다를 끼고 제주와 서울에 자리한 두 개의 보금자리 역시 각각의 일상을 빼닮았다.


2층 구조의 주택은 앞에 넓은 우드 데크가 펼쳐져 리조트를 연상케 한다. 날이 좋을 때면 정원에 삼삼오오 모여 스탠딩 형태의 가든파티를 열기에도 제격이다.


제주의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파랬다. 태풍 소식이 이어진 며칠, 그간의 걱정이 일순 무색해지자 비로소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게 뻗은 야자수, 해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수평선, 허리 높이로 수더분하게 쌓아 올린 돌담까지. 비행기를 타면 고작 1시간도 안 되는 거리건만 섬이라는 땅덩어리는 여전히 이국처럼 다가온다. 바람이며 햇볕, 냄새까지 낯선 데다 어쩐지 그 생경함이 싫지만 않으니 신기한 노릇. 아마 그래서였을 테다. 3년 전 정리나 씨가 이곳에서 또 하나의 삶을 꾸리게 된 이유 말이다. “늘 짧게나마 여행을 하는 느낌이에요. 한 달에 열흘 정도 머물지만 여전히 올 때마다 설렌답니다. 그게 일상에 리듬이랄까, 활력을 더해주기도 하고요.”
정리나 씨 부부는 두 개의 삶을 꾸려간다. 서울의 오피스텔은 평일 주거에 활용하고, 제주는 세컨드 하우스의 개념이다. 오직 둘만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불필요한 부분은 덜어내고 꼭 필요한 부분에 집중한 결과다. 제주 집은 무엇보다 그 호젓함에 반했는데 지척에 협재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산책하듯 걸어서 왕래할 수 있고, 여느 타운하우스와 달리 8개동만 이웃해 있어 번잡스럽지 않아서 좋다. 주택 자체는 미니멀하지만데크로 이어지는 발코니와 넓은 마당은 작은 수영장까지 품어 제주다운 운치를 더한다.


1 1층 거실에서 바라본 정원. 길게 뻗은 데크 옆에 프라이빗한 수영장을 마련했다. 집 둘레의 야트막한 돌담이 짐짓 제주다운 풍경을 완성해준다.
2 게스트 룸 쪽에서 바라본 주방. 주방의 아일랜드는 ‘ㄷ’자형으로, 거실과 테라스 쪽으로 향해 있다.
3 거실과 게스트 룸으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단차를 두어 입체감을 더했다. 그 앞에 놓은 현무암 디테일 계단은 하나의 장식으로도 손색없다.


4, 6 제주를 찾는 지인을 위해 마련한 게스트 룸은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연출했다. 방 안에서도 탁 트인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구조다.
5 인테리어는 깔끔하게 마무리하되, 제주의 정취가 느껴지는 사진을 데커레이션으로 활용해 통일감을 주었다.


시작, 리나스 테이블
정갈하고 고급스럽게 마감한 주택은 1층에 넓은 주방과 두 개의 게스트 룸, 2층에 부부를 위한 마스터 룸과 서재가 자리한다. 와이드한 통창 구조 덕분에 공간 어디서나 자연을 가까에서 느낄 수 있고, 현무암과 같은 소재를 활용해 섬세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서도 탁 트인 시야에서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현재 ‘리나스 테이블(Lena’s Table)’(www.lenastable.com, www.instagram.com/lenas.table)이라는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요리 영상 콘텐츠와 레시피 개발, 강의와 푸드 스타일링 등 요리와 관련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푸드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대기업 교육팀에서 7년간 근무하다 돌연 제2의 삶을 시작한 셈인데 그 전환의 시작에 제주가 함께했다.
“원래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공간 덕분에 신선한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자연 속에 있다 보니 식재료며 스타일링에도 더 다양한 시도를 해보게 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곳의 리듬대로 흘러가게 되는데 그 또한 즐거운 경험이에요.”


붙박이장과 침대로만 채워 깔끔하게 연출한 2층 마스터 룸. 부부의 책상 역시 마치 카페처럼 창을 향해 나란하게 배치했다.


1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는 장식적인 조명을 달아 심심하지 않게 연출했다.
2 2층에 마련한 서재 겸 만화방. 손님을 위해 350권이 넘는 만화책을 준비해두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부지런히 그리고 야무지게 갈고 닦아야 한다는 말을 버릇처럼 되뇌이는 그녀에게서는 건실한 욕심 같은 게 읽힌다. 르 꼬르동 블루에서 프렌치, 나카무라 아카데미에서 제빵 전문 코스를 밟고, 태국 요리와 사찰, 궁중 음식까지 섭렵한 그는 WSET Level 1&2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고. 그래서일까. 제주 공간 구석구석에서는 각종 조리법과 스타일링 관련 서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를 하고, 예쁘게 담아낼 때 가장 행복하다는 정리나 씨.


빛깔, 때깔, 맛깔 고운 쉼표 같은 매일
“제주는 식재료뿐 아니라, 테이블을 장식할 데커레이션 아이템도 풍부해요. 봄에는 유채, 여름에는 수국과 해바라기, 가을에는 갈대, 겨울에는감귤처럼 색과 모양새가 저마다 다른 자연의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지요. 오늘 테이블 세팅에 활용한 감귤도 이웃 농장에서 직접 따 온 것들이랍니다(웃음).”
오일장에 들러 싱싱한 식재료를 발견하는 재미는 또 어떻고. 때마다 제철 재료를 구해 그에 맞는 이채로운 조리법을 만나고 익히는 것 또한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정리나 씨가 제안하는 가을 테이블은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햇빛을 머금은 감귤을 주인공 삼아 노랗게 물든 열매와 잎 그대로를 살려 자연스레 연출했다. 어느 하나 같은 색이 없으니 흐드러진 꽃 못지않은 효과를 줄뿐더러 싱그러움을 더해 가든파티에어울리는 야외 테이블 세팅에 안성맞춤.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가벼운 식사 자리가 덕분에 더 환하게 빛난다.

“아직 어린 귤이라 새콤한 맛이 강하지요? 데커레이션으로 써도 좋지만 식사 후 디저트로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예요. 밭에서 바로 딴 유기농 귤이라 껍질을 잘 말려 귤피차로 즐겨도 좋답니다. 저도 가을볕에 바삭하게 말려 겨우내 활용하려고요.”

자연스러운 일상을 제주의 ‘자연’ 속에서 찾은 정리나 씨. 따듯하고 정갈한 여백을 품은 공간 덕분에 그녀의 레시피 북은 한층 더 풍요로워지고 있다. 벽 대신 담이 자리한 공간, 마트 아닌 텃밭에서 공수한 식재료를 연구하는 일은 그래서 놀이와 일의 경계를 넘나든다. 오직 이곳에서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기꺼이 누릴 것. 도시에서는 미처 몰랐던 작은 것의 소중함이 하루하루 다르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화이트와 오렌지를 메인 컬러로 삼은 테이블 세팅. 눈부신 가을볕이 또 하나의 데커레이션이 되어준다.


제주 제철 재료로 계절 담아 차린 내추럴 테이블


쌀쌀한 가을날의 별미, 화이트 와인 홍합찜 가을 홍합은 식감이 쫄깃할뿐 아니라 보다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홍합을 찔 때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잡내를 제거할 수 있으며 와인 특유의 향이 더해져 별다른 조리 없이도 완벽한 한상차림을 낼 수 있다.


씹히는 맛이 일품인 새우&대파 파스타 새우와 대파는 맛뿐 아니라, 색깔도 잘 맞는 조합이다. 파, 마늘 오일을 내어 새우에 향을 입히면 씹는 내내 기분 좋은 향이 입 안에 감돌아 먹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거실 한쪽에 마련한 책장. 서울의 공간에는 라메리트의 원목 가구를 들여 전체적으로 하나의 분위기로 흐를 수 있도록 톤을 통일했다.


정리나 씨가 제안하는 연말을 위한 디너 테이블 세팅. 레드와 블랙을 포인트로 연출했다.


일몰 즈음, 창밖은 어렴풋한 핑크빛으로 물든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즐기는 디너 테이블.


도심 한복판에서 즐기는 어번 라이프
부부의 서울 집은 시티 라인이 한눈에 걸리는 24층에 위치한다. 오피스텔용 건물은 흔히들 사무실로 사용하지만 부부는 과감히 주거용으로 선택했다. 내부 구조도 모두 달랐는데 방의 개수가 적은 대신 거실과 주방이 넓은 구조를 택해 거주용과 쿠킹 스튜디오로 쓸 수 있도록 마련했다. 공간은 넓은 거실을 중심으로 부부의 마스터 룸과 그와 면한 욕실, 그리고 라운지 겸 서재로 쓰는 방이 전부. 레이아웃은 간단하지만 천연 석재와 마블 등 다양한 물성이 공간을 보다 입체적이고 모던하게 완성해준다.
“서울 집은 거주 공간 겸 쿠킹 스튜디오로 활용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음식’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모여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고 함께 누리는 소셜 다이닝에 관심이 많은데, 아마도 이 곳이 그 중심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녀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1월 말, 100여 개에 달하는 레시피와 테이블 스타일링 노하우를 담은 책이 세상에 나온다. ‘일류’ 요리를 ‘일상’에서도 더 즐겁고 멋지게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다양한 시도를 담았다. 뜨거운 여름, 그간의 열정을 한 권의 책에 녹여내며 그녀는 제주와 서울을 바삐 오갔다. 서로 다른 두 개의 공간. 하지만 마치 와인과 그에 잘 어울리는 음식이 따로 있는 것처럼 공간은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 그릇인 양 맞춤하게 어울려 그럴싸한 마리아주를 빚어냈다.


1 따듯한 원목 느낌을 살려 연출한 마스터 룸.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가구로만 채웠다.
2 마스터 룸 옆에는 개방형 세면대와 욕실이 있다. 원시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천연석은 공간을 한층 고급스럽게 만들어준다.
3 와인과 어울리는 푸드 페어링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 정리나 씨. 잘 숙성된 와인처럼 자신의 삶도, 일도 향기롭게 익어가기를 꿈꾼다.

연말 모임을 위한 어번 다이닝 테이블
연말 파티를 떠올리면,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정리나 씨가 제안하는 디너 테이블은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리는 붉은색 캔들과 톤 다운된 센터피스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때 그린 소재의 잎을 따로 준비해 한쪽에 놓으면 더 감각적인 연출이 가능하다.


가을을 담뿍 담은 3가지 버섯 수프 가을 버섯은 특히 더 향기롭고 깊은 맛이 난다. 양송이버섯, 느타리버섯, 만가닥 버섯 3가지를 곁들이면 한층 향기로운 수프를 즐길 수 있다. 보통 수프는 와인과 매칭하지 않고 식전에 따뜻하게 몸을 데우는 역할을 한다.


카프레제 샐러드와 화이트 와인 신선한 토마토, 생모차렐라 치즈, 향긋한 바질을 주재료로 한 카프레제 샐러드는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샐러드로, 간단하지만 격식 있는 만찬의 주인공으로 부족함이 없는 메뉴. 화이트 와인과 매칭해 입맛을 돋우기에 제격이다.


껍질콩과 만가닥버섯을 곁들인 채끝 스테이크와 레드 와인 연말 파티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스테이크. 가니시로 껍질콩과 만가닥버섯을 미리 볶아 준비해놓으면 큰 부담 없이 스테이크 메뉴를 서빙할 수 있다.



Editor홍지은

Photographer이종근(제주), 문성진(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