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즐거운 놀이터 하우징 June, 2020 유머러스하고 기발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꾸 끌리는 친근한 디자인. 1990년대 네덜란드 디자인 파워를 전 세계에 알린 드로흐 디자인의 초창기 멤버이자 대중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 리카르트 휘턴의 집. 그가 특유의 재치를 발휘해 꾸민 집은 아이디어로 가득한 놀이터 같다.

유쾌한 반란을 꿈꾸는 디자이너
‘소식이 뜸한 왕년의 대스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네덜란드 디자이너 리카르트 휘턴(Richard Hutten)이 집을 공개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그는 1991년 아인트호벤 산업디자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바로 로테르담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를 오픈하며 가구와 생활용품, 인테리어 그리고 전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활동을 펼친 전도유망한 디자이너였다. 그리고 1993년 그의 동료들과 뜻을 함께해 참여한 드로흐 디자인 그룹을 통해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우뚝 서게 되었다. 매년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신제품 가구를 발표하는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 ‘디자인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기 때문. 일자형 벤치에 등받이 두 개를 지그재그로 바라보게 배치해 양쪽 모두 앉도록 한 싱즈(Things) 시리즈부터 헌 옷을 켜켜이 쌓아 메탈 벨트로 묶어 만든 래그(Rag) 체어 등 고정관념을 탈피한 그의 작품은 진지하고 정제된 디자인을 추구했던 가구 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더불어 버려진 물건과 산업 재료를 재활용한, 환경까지 생각한 유연한 사고는 디자이너로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런 그의 재기 발랄한 디자인은 멈추지 않았다. 시그너처 작품이기도 한 양손잡이 머그 덤보(Dumbo)는 2000년 출시 당시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필수품이 되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베스트셀러였다.


집은 즐거운 놀이터라는 신념을 엿볼 수 있는 거실로 축구 놀이대를 중앙에 두었다. 왼쪽 벽 앞의 우드 체어는 리카르트 휘턴, 블랙 체어는 마르턴 바스(Marten Bass)의 디자인이다.


거실 가운데 벽면에는 휘턴과 함께 드로흐(Droog)에서 활동한 디자이너 테요 레미(Tejo Remy)의 대표작인 체스트 오브 드로어즈(Chest of Drawers)를 두었는데 버려진 서랍장을 묶어 만든 것이다. 그 옆에는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토이오(Toio) 조명을 두었다.


1 거실 중심에는 휘턴이 디자인한 노 사인 오브 디자인(No Sign of Design) 시리즈를 마치 컬러 픽셀 조형물처럼 쌓아놓았다.
2 블랙 컬러의 가구로 독립적인 영역을 확보한 주방. 한쪽 파티션에서 뻗어 나온 여러 개의 조명이 곳곳을 비추도록 설계한 것이 매력 포인트다.


벽과 벽 사이 공간에 홈 오피스를 마련했다. 자작나무와 호두나무로 만든 책상은 휘턴의 개성이 오롯이 담긴 3 마이너스 1(Three Minus One) 데스크로 50개 한정 수공예로 제작했으며, 그중 한 개는 네덜란드 여왕이 구입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집
덤보 머그는 무려 50만 개 이상이 팔리면서 휘턴을 대중적으로 성공한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플라스틱으로 덤보 머그를 만든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고. 내구성이 견고해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환경에 반하는 소재라는 점이 늘 그의 양심을 짓눌렀던 것. 2년 전 플라스틱과의 결별을 선언한 그는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하에 지속 가능한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휘턴의 의지가 현실적으로 반영된 곳이 바로 그의 집이다.
2008년 로테르담 중심부에 있는 대형 차고를 구입해 집으로 개조하고 지금까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실내 500m²(약 150평), 정원 900m²(약 270평)의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집은 차고 특유의 구조를 존중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특히 박공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창 형태의 패널 지붕을 적용해 자연광이 집 안 곳곳에 스며들도록 했다. 또한 개방적인 구조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거실과 주방, 홈 오피스 등의 공간을 별도의 문이나 벽을 세워 구분하지 않고 가구와 소품만으로 영역을 나눈 점이 돋보인다. 집 안 곳곳에 놓은 가구와 소품은 오랜 시간 그가 수집하고 제작한 것으로, 새로 구매한 제품은 하나도 없다. “이 집은 에너지 뉴트럴(Energy Neutral)을 실천한 곳이에요. 냉난방은 정원 150m 지하에 묻은 3개의 파이프를 통한 지열 시스템으로 해결하고,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죠. 다섯 식구가 생활하면서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발전량이 많으니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있는 셈이죠.”


1 볼록하게 튀어나온 입체적인 원과 감각적인 컬러가 눈길을 끄는 스토(Stow) 체스트는 휘턴이 디자인한 것으로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한정 생산한 제품.
2 가치 있는 디자인을 모아온 휘턴의 컬렉션을 엿볼 수 있는 공간. 십자가 등받이가 인상적인 크로스(Cross) 벤치는 1994년 그가 드로흐에서 활동할 때 발표한 것이고, 헌 옷을 쌓아 엮어 만든 빨간색 래그 체어는 같이 활동한 테요 레미의 작품이다.


다이닝 룸 벽면에는 가족사진과 디자인 드로잉 그리고 친구들의 그림 작품까지 담은 다양한 액자가 가득하다. 다이닝 테이블 레이어스(Layers)는 2009년 휘턴이 디자인한 것으로 여러 개의 패널을 켜켜이 쌓아 올린 다리 디자인이 특징.



창의적으로 놀고 쉬는 보금자리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만드는 작업이죠.” 휘턴은 디자이너로서 환경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에너지 절감 생활을 실천하며 미래 환경이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집을 꾸미는 데는 한 푼도 안 썼지만 에너지 절약 시스템에 과감히 투자했다고. 요즘 그의 디자인 활동이 예전만큼 대중적으로 감지되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채식주의자가 되고, 환경 실천가를 자처한 휘턴은 여러 산업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생산 시스템과 제품 개발 프로젝트 등 디자인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렇다고 에너지 넘치는 유쾌한 그의 디자인을 아주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단종된 덤보 머그는 그의 작업실에 탑처럼 쌓여 자리하고, 책상 위에 서랍장이 달린 유니크한 데스크 역시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그의 집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으니. “집은 재미있는 놀이터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컬렉션으로 가득해 영감을 주고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죠. 그렇기에 집은 제게 더없이 소중한 공간입니다.” 학생 때부터 마음에 드는 친구의 졸업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한 그는 디자인 박물관에서 초대전을 할 만큼 희귀한 의자 컬렉터로도 인정받았다.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작품은 집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둔다는 그의 공간에는 드로흐 활동 초기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들이 유독 눈에 띈다. 궁극적으로 환경에 대한 윤리 의식이 담긴 디자인을 지향하는 리카르트 휘턴은 아이디어 보물 창고와 같은 그의 집에서 오늘도 즐겁게 놀면서 창의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


휘턴은 욕실 역시 재미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렇기에 욕조를 바닥에 매립하고 자신이 디자인한 어린이 의자 브론토(Bronto)를 벽에 걸어 유쾌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침실은 휘턴 자신이 디자인한 접이식 펜던트 조명 선더 볼(Thynder Ball), 나비 모양의 큰 훅이 매력적인 코트 랙 버터플라이(ButterFly), 골드 사이드 테이블 오페라(Opera)로 개성 있는 공간을 연출했다.

Editor김소현

Photographer필리포 밤베르기(Filippo Bamberg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