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가옥에 펼쳐진 총천연색 하모니 하우징 April, 2020 잠시 머물다 떠날 생각으로 마라케시를 찾았던 부부는 어느덧 타일 디자이너로 변신해 모로코에 터를 잡았다. 그들의 첫 보금자리인 전통 가옥은 마음껏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말 그대로 인테리어 디자인의 실험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자유롭게 연출하는 디자인의 모험
LA에서 필름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새뮤얼 다위샌드스(Samuel Dowe-Sandes)와 그의 부인 케이틀린(Caitlin)이 모로코 마라케시에 처음 방문했던 건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안식년을 맞아 세계 일주를 계획했던 부부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마라케시를 첫 목적지로 점찍었다.
“여행의 첫 기착지였는데, 이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 바로 정착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케이틀린과 새뮤얼은 마라케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1년간 그들이 살 집을 물색했고 모스크 사원 옆에 자리한 모로코 전통 가옥인 ‘다르(Dar)’를 계약했다. 원래 사원 종교인의 거처였던 다르는 마침 빈 상태였고 부부는 이곳을 직접 개조해 살기로 결심한 것.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남편, 한때 건축 회사 홍보 담당으로 일했던 부인이 의기투합한 리노베이션은 거침없이 진행되었다.
“여기 사람들은 석고며 목공, 금속 작업 모두 전동 공구 하나 없이 해내더군요. 자연스레 그 작업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답니다.”
부부가 직접 개조를 진행하는데 있어 한 가지 고민거리는 바로 타일이었다. 틀 안에 염료와 콘크리트를 붓고 유압으로 굳혀 만드는 모로코 타일은 세라믹 타일과 달리 색감과 문양이 살아 있었지만 미국인 부부에겐 너무 현란하고 이국적이었다. 두 사람은 직접 타일 제작소를 찾았고 원하는 색감과 도안을 설명해 자신의 집을 위한 타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하학적인 패턴과 자연스러운 파스텔 톤의 조화, 중성적인 컬러와 세련된 라인으로 표현한 에스닉한 패턴 등 부부의 취향으로 재탄생한 콘크리트 타일은 그들의 보금자리를 수놓았고, 14년이 지난 지금 부부가 세운 디자인 회사 팝햄(Popham)의 본부이자 실험실이 되었다.


마치 우리네 한옥처럼 중정을 마련한 모로코전통 가옥 다르(Dar). 바닥 타일을 비롯해 카펫,스툴, 브라스 사이드 테이블 모두 팝햄디자인에서 자체 제작했다.


1 2층 서재는 타일을 활용한 아트 월로 이채롭게 꾸몄다. 천장과 벽면은 각각 타일에 있는 컬러의 페인트로 칠해 아트 월이 돋보이게 연출했다.
2 중정과 리빙 룸 사이, 아치형 입구 아래 서 있는 팝햄 디자인 설립자 케이틀린&새뮤얼 부부.


폭이 좁고 긴 1층 복도는 왼편의 아치 입구를 통해중정과 이어진다. 가파른 계단 중심부는 카펫을 깐듯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 시선을 위로 유도하며,공간이 한층 확장되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벽면에 설치한 브라스 콘솔 선반은 ‘팝햄 플러스’,오른쪽 벽에 건 그림은 새뮤얼의 아버지 로저샌드스(Roger Sandes) 작품이다.


1 컬러가 자연스럽게 물든 직사각형 타일의 조합으로 화사함이 돋보이는 게스트 룸. 아치 도어 뒤로는 푸른 바다 빛깔을 닮은 타일로 마감한 욕실이 자리한다. 침대 벽면 조명은 1950년대 빈티지로 프랑스 조명 디자이너 자크 비니(Jacques Biny)가 제작했다.
2 금속 조명과 가구 컬렉션까지 디자인 영역을 넓히고 있는 팝햄 디자인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 짙푸른 벽면 위에 설치한 ‘골든 에그’ 조명은 1mm 두께의 브라스를 모로코 공예가들이 손수 두들겨 제작했다.
3 타일에 즐겨 사용하는 컬러와 패턴을 페인트로 그려 넣은 계단. 손으로 만든 전통 가옥의 특성상 계단 표면이 매끄럽지 않아 타일을 시공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해 연출한 아이디어다.
4 부부가 직접 꾸민 리빙 룸. 바닥은 스카이 블루와 코코아 컬러를 조합한 ‘켈리’ 타일로 마감하고 벽면은 하늘색 페인트로 칠했다. 데이베드와 스크린, 콘솔은 마라케시 플리마켓에서 구입했으며 콘솔은 핀 율이 디자인한 것이다. 벽면에 건 브라스 스틱은 픽업 스틱스(Pick-up sticks) 조명, 브라스 스툴 겸 사이드 테이블 헥사곤·펜타곤은 모두 팝햄 디자인에서 만들었다.



전통에 디자인을 더하다
부부와 이 집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처음 5년을 살고, 그사이 아이가 생기면서 마라케시 뉴타운으로 거주지를 옮겼던 그들이건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자 운명처럼 다시 돌아온 것. 부부는 이곳을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작업실이자 별장으로 쓰기로 마음먹고, 그간 손댈 수 없던 부분까지 과감히 개조했다.
“중정 바닥을 타일로 마감한 덕분에 생활 편의는 높이면서 뛰어난 미감을 갖출 수 있었어요.”
하늘색과 흰색의 길쭉한 마름모 패턴 타일을 깐 중정은 물결치는 바다를 연상케 하고, 그 위에 놓은 푹신한 데이베드와 테이블은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섬처럼 다가온다. 외관뿐 아니다. 실내는 가능한 한 전통미를 보존하되 모던한 팝햄 타일과 잘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손으로 지은 집이라 울퉁불퉁한 시멘트 계단은 타일로 마감하는 대신 타일 속 패턴을 페인트로 그려 넣었으며, 방마다 적용한 타일은 비정형의 톤 다운된 파스텔 등을 사용해 모던하면서도 부드러운 자연미를 살렸다. 요즘 새뮤얼과 케이틀린은 마라케시의 실력 있는 수공예 장인과 협력해 금속 가구와 조명 그리고 카펫 등을 제작하며 디자인 영역을 보다 넓고 깊게 확장해가고 있다. “이곳에선 상상만 하면 됩니다. 다양한 표현력을 지닌 장인의 손길은 기계 미학으로 탄생한 디자인과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1 마스터 베드 룸에 자리한 욕실. 각기 다른 파스텔 톤 5각형 타일을 조합해 자연미가 돋보인다. 브라스 거울은 팝햄 디자인 제품이며 벽 조명은 1950년대 프랑스 빈티지이고, 세면대와 욕조는 마라케시 플리마켓에서 구했다.
2 멤피스 디자인에서 즐겨 사용한 색상 조합을 응용한 컬러 블록 벽 장식이 인상적인 다이닝 룸. 팝햄 디자인의 반원형 황동 조명은 비늘처럼 반만 자른 구멍 사이로 빛이 퍼져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원형 테이블은 에로 사리넨, 티크 의자는 1960년대 빈티지로 덴마크 가구 디자이너 한스 올센(Hans Olsen) 작품이다.
3 길쭉한 직사각형의 바게트 타일을 헤링본 패턴으로 시공한 바닥과 벽면이 돋보이는 주방.


마스터 베드 룸은 라운지 전실과 침실로 구성된다.전실은 팝햄 디자인이 선별한 현지 수공예가와 협업한스툴 및 및 패브릭으로 완성한 공간으로, 팝햄이추구하는 토털 인테리어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침대헤드보드는 벽면에 조합한 헥사곤 패턴 타일 속 4가지컬러를 모티프로 부부가 직접 디자인했다.

Editor홍지은

Photographer니콜라 마테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