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위한 아트 하우스 하우징 February, 2020 인테리어 디자이너 하이메 베리에스타인(Jaime Beriestain)이 10년간 살던 집을 새롭게 고쳤다. 50세가 되니 디자이너로서 20년 넘게 쌓아온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낼 용기가 생겼다는 그가 새 단장한 집을 공개했다.

경험과 가치를 나누는 디자이너
어느 도시나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핫 플레이스가 있고, 트렌드를 이끄는 크리에이터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하이메 베리에스타인은 그 도시의 라이프 크리에이터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칠레 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디자인 스튜디오를 연 지 어느덧 20여 년. 그는 하얏트 리젠시, 메리어트 등 세계적인 브랜드 호텔과 협업하고 럭셔리 부티크, 고급 주택과 상업 시설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공간에 대한 그만의 신념을 표현해왔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3년 바르셀로나의 중심부인 그라시아 거리에 라이프스타일 숍을 오픈한 후부터다.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인테리어 편집숍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열고 그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한 것.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어요. 브런치를 즐기면서 꽃도 사고, 식사를 한 후에는 아름다운 소품과 가구를 한자리에서 구경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꿔왔거든요.” 베리에스타인은 호기심이 왕성한 인물로 유명하다. 어떤 것에 관심이 생기면 그 대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디자인 철학. 이러한 습성은 그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판매하는 다양한 물건과 음식은 그가 직접 사용하고 먹어본 것 중 엄선했다. “아무리 바빠도 주말에는 꼭 주말농장에 가요. 그곳에서 수확한 식자재로 만든 메뉴도 여럿 있죠.” 자신이 경험한 가치를 공유하길 바라는 크리에이터로서 베리에스타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사한 흰색 바탕에 선명한 블루 컬러의 아트워크와 가구로 포인트를 준 거실. 벽면에 건 그림은 미국의 화가 피터 핼리(Peter Halley)의 작품, 파란색 테이블은 이브 클랭(Yves Klein)이 1961년에 제작한 것이며 피에르 잔느레의 오리지널 암체어는 베리에스타인의 오랜 소장품이다.


1 세계적인 호텔 디자인 프로젝트를 비롯해 스페인의 상업 공간 등 여러 분야를 오가며 감각적인 인테리어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 하이메 베리에스타인.
2 벽면과 바닥은 물론 가구까지 화이트 컬러로 통일한 이유는 그의 예술 작품이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소파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로베르토 라체로니 스튜디오, 소파 옆의 세라믹 조형물은 칠레의 조각가 페르난도 카사셈페레(Fernando Casasempere)의 작품.


벽면 한쪽을 베리에스타인이 소장한 책으로 빼곡히 채워 그 자체로 하나의 장식이 된 라이브러리 공간. 책장은 공간에 맞춰 직접 제작했으며 아래쪽은 거울로 마감했 다. 파란색 벨벳 소재의 빈티지 소파는 책장 맞은편에 놓인 이브 클랭의 테이블과 벽면의 아트워크 컬러에 맞춰 선택했다.



빛과 여백이 그려낸 집 혹은 갤러리
2019년 베리에스타인은 50세를 맞이했다. “개인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살아온 세월이 더 길다는 걸 깨달은 순간, 제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전환점의 일환으로 10년 동안 산 집을 개조하기로 결심했다. 개인과 디자이너로서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동시에 두 개의 자아를 하나로 연결하는 작업인 셈. 10년 전 사무실이었던 공간을 집으로 탄생시켰던 그는 아트 컬렉터답게 집 안 곳곳에 작품을 두고 이를 돋보이게 해줄 만한 가구와 소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것들이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이번에 진행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은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작품 본질에 집중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직업 특성상 그는 다양한 아티스트와 교류하고 그들의 다양한 작품을 접했을 터.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작업에 대한 영감을 얻고 세상을 배워온 그는 자신의 가치와 맞닿아 있는 작품들만을 골라 집에 남겨두기로 했다. 그 결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영감을 받는 블루, 골드, 블랙, 화이트 총 네 가지 컬러를 대표하는 아트워크를 선별하고 작품의 매력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자리를 찾아주는 과정을 거쳤다. 실내 마감은 기존의 화이트 컬러를 유지하되 더욱 매끄럽고 반듯한 자재로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조명은 갤러리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여러 조형물은 특별히 주문 제작한 받침대에 올려두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빛과 여백을 통해 작품이 지닌 색감, 질감,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함이다.


유리창 앞에 안락의자와 푸른 식물을 비치해 아늑한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미국의 조각가 디미트리 하디지의 브론즈 작품 ‘리버 스틱스(River Styx)’를 실제 갤러리에서 전시할 때처럼 연출했다. 이지 체어는 워런 플래트너(Warren Platner), 우드 스툴 ‘스몰’은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것으로 오리지널 빈티지 제품이다.


1 침실 역시 예술 작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흰색으로 마감했다. 침대는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헤드보드가 없는 것으로 선택하고 침구 또한 화이트 컬러로 선택했다. 벽에 건 그림은 제이슨 마틴, 침대 옆의 협탁으로 활용하는 ‘캔디 큐브’는 네덜란드 작가 사비너 마르셀리스(Sabine Marcelis)의 작품. 침대 위에 놓은 지오메트릭 쿠션은 데다르(Dedar)의 패브릭으로 직접 제작했다.
2 침실 곳곳에는 컬러풀한 아트워크로 포인트를 주었다. 문 옆의 긴 아크릴 조각은 바사 벨리자르 미히치(Vasa Velizar Mihich), 그 아래 레진으로 제작한 핑크색 큐브는 사비너 마르셀리스의 작품. 사이드보드 ‘칸사도(Cansado)’는 샤를로트 페리앙의 오리지널 빈티지며 그 위 벽에 건 아트워크 ‘어나더 엔드(Another End)’는 스팽글을 소재로 한 것으로 노상균 작가의 작품이다.



예술과 사람이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베리에스타인은 자신의 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작물로 음식을 만들 만큼 요리와 주방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이번 리모델링 과정에서 주방의 메인 컬러를 골드로 하는 과감한 작업을 진행했다. “키친과 다이닝 룸 사이에 보스코 소디(Bosco Sodi)의 골드 큐브 토템 조형물을 놓고 싶었어요. 그랬을 때 두 공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결과적으로는 원래 흰색이었던 주방 가구에 골드 컬러를 입히게 된 거죠.” 그의 실험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주방은 다소 복잡한 시공 과정을 거쳤다. 얇은 황동 시트를 산성 용액으로 부식시켜 최대한 작품과 가까운 톤으로 맞추고 이를 주방 가구 브랜드 불탑 제품 위에 붙여 마치 조형물의 연장선과도 같은 공간을 완성한 것. 다이닝 룸도 비슷한 맥락으로 작업했다. 보스코 소디의 조형물을 검은색 벽면 앞에 두고 싶었던 베리에스타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시각적인 요소를 잘 표현할 수 있는 화가를 섭외해 블랙 컬러의 코르텐 스틸을 소재로 한 벽화를 만들었다. “아트워크를 신성화하는 작업이 아니에요. 오히려 작품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미고 생활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생각해낸거죠. 제 집에 만지면 안 되는 작품은 없습니다.”
베리에스타인은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개인 공간과 인테리어 작업이 어떤 유행에 의해 규정되거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해석되길 바라기 때문. 한 예술가의 오랜 고민과 탐구를 통해 탄생한 예술품이 우리를 미처 몰랐던 세계로 이끌고 자극하는 것처럼 말이다. 베리에스타인은 자신이 ‘두 번째 집’을 담담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쉰이라는 나이가 준 용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100세 시대, 그의 진화는 이제 겨우 반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1 다이닝 룸의 한쪽 벽면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알레한드로 할레르(Alejandro Jaler)의 벽화 작업으로 완성했다. 코르텐 스틸을 활용해 녹슨 철판의 느낌을 낸 것. 베리에스타인은 검은색 바탕으로 골드 컬러의 조형물이 돋보일 수 있기를 바랐다.
2 골드 컬러로 마감한 돌덩이 형태의 조각과 큐브를 쌓아 올린 형태의 조형물, 그리고 벽면에 건 검은색 아트워크는 모두 보스코 소디의 작품이다. 미니멀한 원형 테이블은 피에르 샤포 디자인으로 1950년대에 제작한 빈티지 제품이며 장 프루베의 ‘스탠더드’ 의자 역시 오리지널 빈티지 컬렉션이다.


벽면과 선반을 사진 작품으로 채워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건식 욕실. 공간에 맞게 수공예로 제작한 세면대는 라임스톤 소재이며 벽면은 천연 라피아 소재로 마감했다. 튤립에서 모티프를 얻은 벽 조명은 이탈리아의 미드센추리 모던 빈티지, 세면대 하단의 블랙 사이드보드는 1960년대 노르딕 빈티지 디자인이다.

Editor오하림

Photographer마놀로 이에라(Manolo Yll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