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일상의 공존 하우징 November, 2019 소파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자신이 만든 작품으로 완성한 집이라니. 무대 디자인을 시작으로 가구, 조명 그리고 인테리어 작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우아하고 세련된 모던 클래식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피에트로 루소의 스튜디오 하우스. 그의 작품으로 가득한 공간으로의 초대.

총체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크리에이터
최근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눈길을 끈 하이엔드 브랜드의 대표작은 이탈리아 남부 출신 디자이너 피에트로 루소의 작품인 책장 파티션 시리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작품으로만 꾸민 공간이라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제아무리 스타 디자이너라 해도 자신이 직접 제작한 가구와 소품으로만 공간을 채우는 경우는 기획전이 아니고선 드문 일. “저는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해요. 그렇기에 제가 디자인한 가구가 제 기능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작품을 집에 들이게 되었죠.” 이렇듯 고집스러운 노력이 있었기에 9년이라는 짧은 이력에도 최근 3년간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서 다수의 주요 브랜드 가구 디자인을 맡으며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일 테다. 원목의 매끈한 마감, 벨벳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브라스 디테일, 간결한 기하학적 형태미는 시리즈로 계획해 만든 가구가 아님에도 총체적인 조화를 이룬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파티션도 겸할 수 있는 양면 책장, 불을 켜지 않을 때는 거울이 되는 조명, 확장 및 축소가 가능한 모듈 선반 등은 루소가 가구의 실용성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연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특히 벽체 하나 없는 스튜디오를 가구의 배치만으로 오피스 공간은 물론 리빙 룸, 키친까지 자연스럽게 나눈 것을 보면 루소가 추구하는 디자인 세계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피에트로 루소(Pietro Russo)가 디자인한 가구와 조명으로 꾸민 스튜디오 홈 전경. 전면에 보이는 책장 선반 ‘트라베아(Trabea)’는 솔리드 메이플 우드로 제작한 것으로 20세기 초 건축 테마인 기하학을 응용해 모던하고 우아한 형태로 완성했다. 개방적인 거실 공간은 그의 집무실 겸 리빙 룸으로 사용한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루소는 특히 식물에서 디자인 모티프를 찾는다. 작업을 할 때 시선이 자주 닿는 책상 앞에 다양한 화초를 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창가에 설치한 은행잎 모양의 선반 ‘징코(Ginko)’는 처음부터 화분을 놓는 용도로 디자인했다.


1 이탈리아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한 최고급 솔리드 월넛 소재의 책상 ‘알마(Alma)’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피에트로 루소.
2 연극 무대의 배경 벽화를 그리는 아티스트로도 활동한 루소의 아이디어 스케치는 세밀화를 보는 듯 흥미롭다. 노트에 그린 은행잎은 그의 책상 앞에 설치한 화분 선반을 구상하며 스케치한 것.



오래된 미래를 꿈꾸는 모던 클래식
피에트로 루소의 스튜디오는 밀라노 치타 스투디(Citt? Studi) 지역에 있는 1930년대 지어진 고전미 가득한 건물에 자리한다. 200m² 규모의 스튜디오는 작업 구상과 미팅 등의 업무가 이뤄지는 사무실 겸 루소의 집으로 구성했고 같은 건물 지하에는 가구를 만드는 작업장이 있다.

“이 지역은 제게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에요.” 피렌체에서 순수 회화와 도자기를 전공한 그가 디자인을 위해 밀라노로 향했을 때 안착한 곳이 바로 이곳 치타 스투디. 당시 모던한 아파트가 지어지며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낯선 풍경을 만들었고, 고전 예술을 전공한 그에게 디자이너로서 상반된 것들의 조합을 꿈꾸게 했다. 특히 과학, 공학도가 많은 치타 스투디에서 1960~1970년대 일었던 우주 정복에 관한 열망의 분위기는 자연을 존중하는 예술관이 내재된 루소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는 그의 공간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광선 검을 닮은 길쭉한 유리 펜던트와 드론 로봇을 모티프로 만든 브라스 LED 조명이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전하면서도 나선형 계단처럼 배열한 은행잎 모양의 선반과 식물의 이색적인 조화는 어색함 없이 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완벽하게 빈 공간이었던 스튜디오를 피에트로 루소는 자신이 디자인한 가구를 활용해 섹션을 나누고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 소파를 놓은 거실 영역과 주방 사이에서 마름모 관절 구조의 프레임이 특징인 ‘롬보이달레(Romboidale)’ 양면 책장이 파티션 역할을 하며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소파는 그가 유일하게 구입한 가구로 스튜디오 감프라테시가 디자인한 타르가(Targa)로 게브뤼더 토넷 비엔나 제품.


1 그는 다양한 채석장에서 생산된 회벽 재료를 구하고 그 미세한 색감과 농도 차이를 활용해 구름 패턴을 표현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면은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 가득한 하늘처럼 보이고 그 사이에 스패출러로 긁어낸 입체 패턴도 보인다.
2 거실과 주방 사이의 파티션이 되는 양면 책장은 2013년 제작한 것으로 루소가 가구 디자이너로 인정받은 대표작. 그는 이 책장 선반에 줄기가 늘어지는 식물을 놓아 공간을 푸르고 싱그럽게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단순화할수록 생명력을 얻는 디자인
구조를 바꾸기 위해 벽을 허물거나 세우는 작업 없이 마감재 교체와 가구 제작 및 배치만으로 리노베이션을 완성한 것은 루소가 그간 쌓은 경험 덕분. 무대 디자이너로 일한 그는 2001년 세계적 디자인 거장 피에로 리소니 스튜디오와 협업을 시작하며 알레시, 카펠리니, 카르텔 등에서 매장 인테리어 및 프로덕트 프로젝트를 수행했었다. 이번 리노베이션에서 루소의 야심 찬 도전은 창문 하나 없이 10m에 이르는 벽면을 석고로 마감한 것. 더불어 그는 19세기 자연과학 서적에서 가구의 형태와 패턴의 영감을 얻곤 하는데, 판화로 기록된 기상 연구서에서 본 구름 낀 하늘을 공간에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이러한 그의 계획은 스튜디오 한쪽 벽면에 실현되었다. 구름 판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서로 다른 곳에서 생산된 석고를 섞어 발라 색상의 차이를 주고 스패출러로 긁어내 음영으로 입체감을 살린 것. 이처럼 루소는 단순화한 표현으로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그런 만큼 그는 블랙과 화이트의 대비를 직선과 사선의 교차, 음각과 양각으로 형상화한다. “오랜 시간 수집한 오브제를 버리지 않고 더 잘 보이게 둘수록 제가 바라는 디자인의 방향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이처럼 열정으로 채운 스튜디오 하우스는 어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만의 아이디어 보물 창고인 셈이다.


주방 가구 역시 그가 디자인한 것으로 대리석 상판, 브라스와 가죽 손잡이 등 견고하고 고급스러운 자재를 사용해 실용성과 우아함이 돋보인다. 벽면에 설치한 6각형 브래킷 조명은 회벽 마감시 조명이 설치될 위치에 스패출러로 방사형 패턴을 새겨 넣은 덕분에 한층 세련된 느낌이 든다.


1 기존 벽면 하부에 있던 틈새 공간을 활용해 볼륨감이 있는 사이드보드를 마치 매립하듯 넣었다.
2 스튜디오에서 꽤 큰 자리를 자치하고 있는 주방과 다이닝 룸.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루소는 종종 클라이언트, 친구들을 초대해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한다. 다이닝 룸은 8인이 둘러앉을 수 있는 알마 테이블과 드론(Drone) 로봇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드론’ 펜던트 조명으로 꾸몄다.

Editor김소현

Photographer필리포 밤베르기(Filippo Bamberg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