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토리 하우스 하우징 August, 2019 밀라노의 솔페리노 11번가. 가브리엘레 살바토리의 아파트에는 칸딘스키와 모란디의 흔적 그리고 재즈 선율이 은은하게 스며 있다. 자연석 본연의 색과 질감을 담아내며, 여기에 유려한 곡선과 기하학 도형을 더해 완성한 133㎡의 공간은 따뜻한 추상화 한 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즈 음악이 머물다 간 자리
커다란 창을 통해 7월의 햇살이 물결무늬 테라초 바닥에 쏟아진다. 비로소 풍요로운 색을 품은 공간이 속살을 드러내는 이곳은 대리석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살바토리(Salvatori)의 최고 경영자 가브리엘레 살바토리의 아파트다. 보피(Boffi), 데파도바(Depadova), 디모레(Dimore) 스튜디오와 같이 굵직굵직한 브랜드 쇼룸이 모여 있는 밀라노 브레다 디자인 지구 솔페리노 11번가. 19세기에 지어진 팔라초 중정에는 살바토리의 쇼룸이, 맞은편 건물 4층에는 가브리엘레의 아파트가 있다.

2년 전 이웃의 초대로 처음 공간에 들어선 순간, 100여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테라초 바닥 장식은 단번에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20세기 초에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함과 따뜻한 색감, 모티프에 이내 마음을 빼앗긴 것. 밀라노에 올 때마다 머물 수 있는 거처이자 살바토리의 디자인을 ‘집’이라는 따뜻한 컨텍스트에서 표현해볼 최적의 기회와 장소라는 생각이 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라면 이미 누군가에게 임대가 된 후라는 사실이었다.

“그 뒤로 열렬한 짝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부인에게 자주 꽃을 보내기도 했지요(웃음). 그런 저의 정성이 통했는지 딱 2년 뒤에 거주하던 이들이 떠나고 새 임차인을 찾던 건물주에게서 연락이 왔죠.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앞둔 2017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와 함께 브랜드의 쇼룸을 디자인해온 엘리사 오시노(Elisa Ossino)의 진두지휘로 지체 없이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완성한 이곳은 칸딘스키의 추상화에서 얻은 영감, 재즈곡의 선율이 곳곳에 녹아 있다. 푸른 대리석을 닮은 거실의 나무 천장,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곡 ‘블루 인 그린’의 색감을 구현한 가브리엘레의 침실, 파스텔 로즈와 청회색으로 마감한 손님방까지 면면이 경쾌한 색조의 팔레트를 지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모두 덴마크 디자인 브랜드 파일 언더팝(File Under Pop)의 창립자이자 재즈 싱어인 요세피네 아크바마(Josephine Akvama)가 각 공간에 어울리는 ‘재즈곡’을 떠올리며 인테리어한 것.

재즈 애호가인 가브리엘레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 잼 세션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어느 날 중년의 이웃으로부터 “나도 음악을 사랑해요. 그리고 트럼펫을 연주하는 저 친구는 정말 훌륭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새벽 4시고 난 잠을 좀 자야겠습니다”라는 민원 아닌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다고. 가브리엘레는 자신이 이웃들이 가장 싫어하는 임차인이 된 것 같다며 겸연쩍게 고백한다.


1 딱딱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 뒤에 이탈리아인 특유의 건강하고 밝은 성격을 지닌 가브리엘레는 3대째 살바토리 디자인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세계 최초의 재활용 대리석인 리토베르데를 개발했다.
2 1mm까지 오차 없이 계산해 상감 세공으로 완성한 대리석 벽화와 테이블에 올린 대리석 화병은 이탈리아 화가 모란디에 대한 오마주로 제작한 제품이다. 의자는 빈티지, 테이블은 엘리사 오시노가 디자인한 살바토리 제품.


가장 안쪽에 위치한 가브리엘레의 방부터 출입문까지 이어진 긴 복도. 각 방마다 지닌 색의 조합이 바닥 테라초 장식과 잘 어울리도록 디자인했다. 왼쪽의 조명은 마이클 아나스타시에이드가 플로스를 위해 디자인한 IC F1.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조르조 모란디
2009년부터 욕실 디자인은 물론 홈 액세서리까지 오랜 시간 살바토리와 호흡을 이어온 디자이너 엘리사는 답답하게 가로막고 있던 파티션과 인조 천장을 거둬내고 칸딘스키의 추상화에 영감을 받아 입체감 넘치는 공간을 완성했다.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있되 유기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던 가브리엘레의 소망을 구현한 것이다.

“플라스틱 천장을 거둬내자 200여 년의 세월을 담은 나무 골조가 드러났어요. 덕분에 50cm가량 층고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독특한 공간의 성격이 부여되었지요. 마치 눈가에 주름이 좀 있더라도 그 자체로 섬세하고 우아한 중년 여인 같달까요? 테라초 장식 바닥이나 나무 천장, 벽난로처럼 오래된 것에서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온화함과 깊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열정이 잘 드러난 곳은 거실. 중앙의 벽난로 위에 자리 잡은 기하학 문양의 대리석 벽화는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에게 영감을 받아 독특한 패턴과 경쾌한 색감을 지닌 3가지 종류의 자연석을 상감 세공으로 완성했다. 2차원의 대리석 벽화를 3차원의 공간으로 표현하고자 한 엘리사와 가브리엘레의 의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할아버지 기도 살바토리가 1946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3대째 회사를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는 가브리엘레의 영감의 원천은 의심의 여지 없이 자연과 예술이다. 경영뿐 아니라 아트 디렉션에도 깊이 관여하는 그는 세계적 건축가 존 포슨, 마이클 아나스타시에이드, 엘리사 오시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과 다년간에 걸쳐 프로젝트를 함께 해오고 있다. 그는 “인간적으로 끌리지 않으면 ‘슈퍼스타’ 디자이너라해도 함께 작업하지 않습니다”라 귀띔한다. 이탈리아의 조명 브랜드 플로스를 통해 만나 연을 쌓게 된 디자이너 마이클이나 스톤 하우스(Stone House) 프로젝트로 만난 존이 친구가 된 배경이다. 마이클은 자식처럼 아끼는 자신의 프로토타입 조명을 가브리엘레에게 맡겼을 정도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이었을 거예요. 아파트를 쇼룸으로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잘 관리해줄 것을 아니 자신의 조명을 하나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가 원할 때는 언제든 가져간다는 조건을 내걸고요(웃음). 그게 거실 벽난로 옆에 건 저 멋진 조명입니다.” 최근 아나스타시에이드는 살바토리와의 협업을 통해 조명이 아닌 대리석 테이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Love me, Love me not)’를 선보이기도 했다고.


1 가브리엘레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옷장은 4종류의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2 손님방이지만 열한 살짜리 아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 파스텔 로즈의 천장과 멋지게 어울리는 조명은 살바토리, 왼쪽 가구는 빈티지.
3 마일스 데이비스의 ‘블루 인 그린’을 떠올리게 만드는 푸른색 벽에 설치한 조명은 플로스, 왼쪽 테이블과 조명은 살바토리.




주방은 칸딘스키의 추상화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했다. 펜던트 조명은 살바토리의 프로토타입 조명, 테이블은 살바토리, 벽 조명은 마이클이 디자인한 플로스 조명.



모든 시작과 맞물려 있는 내일의 꿈
가브리엘레는 몇 해 전 아들과 떠난 이집트 여행에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느꼈다. 함께 낚시하던 중 강가 하구에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한 것이다.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사실 대리석은 공정 중 40%가 버려집니다. 매주 공장에 폐기물을 수거하러 오는 트럭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를 재활용할 수 있을지 질문했지요. 그 답이 바로 재활용 대리석인 리토베르데입니다.”

미니멀리즘 건축을 추구하는 존 포슨과 함께 한 스톤 하우스 프로젝트 역시 버려진 대리석을 활용해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 그의 열망을 담은 것이었다. 환경과 자연,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는 가브리엘레 그리고 그의 취향으로 가득한 아파트. 곳곳을 대리석으로 연출한 공간이지만 그곳은 차가운 궁전이라기보다 쳇 베이커의 트럼펫 연주가 배어 있는 듯 따뜻하고 안락하며 속 깊은 안식처였다.


1 대리석의 레이어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꾸민 주방 한쪽.
2 욕실은 모두 살바토리의 디자인으로 채웠다. 여느 브랜드와는 다르게 대리석 표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세공해 표현한 질감이 매력적이다.
3 살바토리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감 세공으로 완성한 욕실. 인레이 기술은 한 치의 오차 없이 면밀한 계산과 공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INFO
형태 세컨하우스
면적 133m2
구조 거실 + 손님방 + 방 1 + 욕실 2
주요 마감재 천연 대리석
리모델링&인테리어 포인트
● 20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나무 골조와 바닥의 테라초 장식을 유지하되, 경쾌한 색감으로 리드미컬하게 공간 디자인
● 다양한 패턴과 컬러의 대리석을 주요 자재로 사용하고 가구 역시 기하학 패턴의 인레이 시공으로 완성해 입체적인 인테리어 구현

Editor홍지은

Photographer김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