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영감이 공존하는 곳 하우징 June, 2019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스타일을 공간에 옮겨 담는 일. 자신의 기준에서 재해석하고 표현해야 하기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티치아노 부다피에리와 카트린 보트랭 부부의 집은 오로지 그들이 사랑하는 예술로 가득하다. 마치 갤러리에 머무는 것과 같은 느낌의 둘만의 공간.

개성 넘치는 컬러 베리에이션
“컬러는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우리 일상의 한 요소.” 세계적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한 말이다. 이탈리아 건축가 티치아노 부다피에리(Tiziano Vudafieri)와 프랑스 출신의 카트린 보트랭(Catherine Vautrin) 부부의 집을 들어서면 이 말의 뜻을 이해할 것만 같다. 다채로운 컬러 팔레트가 공간에 활력을 더해 기분 좋게 만드는 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압도하는 컬러의 강렬한 어필은 집 안 곳곳의 요소들까지도 궁금하게 만든다. 티치아노 부부의 집은 밀라노의 포르타 베네치아에 있다. 관광객들로 번잡한 큰 골목을 등지고 작은 골목으로 들어오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그곳에 부부의 집이 있다. 이런 무드를 대변하듯 가장 먼저 초록 식물 가득한 야외 가든이 맞이한다.

과거 유리 공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업사이클링한 것인데 높은 천장고의 매력은 살리고 확 트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중간 벽을 허물었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가 스위스 벽지 회사 살루브라(Salubra)를 위해 개발한 컬러 시스템을 벽면에 적용해 생기를 더했다. 이는 건축가로 활동하는 티치아노의 영향이 컸다. 르 코르뷔지에는 물론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를 동경하고 개성 넘치는 멤피스 디자인 운동을 지향하는 그의 취향은 여러 공간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에 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아내 카트린의 감각이 더해졌다. “좋아하는 예술에는 규칙이 없어요. 어떤 오브제라도 저마다의 각기 다른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우리의 디자인에 영감을 주기도 해요.” 존 암리더의 페인팅, 데이비드 버킨의 사진 등 컨템퍼러리 예술 작품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부가 직접 셀렉트한 예술품으로 꾸민 거실의 벽은 르 코르뷔지에가 개발한 컬러로 마감해 청량한 느낌을 선사한다. 벽면에는 티치아노가 가장 좋아하는 존 암리더의 오-루체(O-Luce) 작품과 마르제나 노웍의 콜라주 페인팅을 걸어뒀다. 그 아래 아이코닉한 가구가 돋보이는데 대리석과 나무로 만든 커피 테이블은 에토레소트사스의 작품이고, 블랙 컬러의 소파는 루이치 카차 도미니오니(Luigi Caccia Dominioni)가 가구 브랜드 아추체라(Azucena)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1 집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연한 그린 컬러로 산뜻함을 더했다. 1960년에 디자인된 아르테루체의 펜던트 조명 아래로 오스카 투어존의 테이블을 놓았다. 벽면의 아트 피스는 로베르토 코다 차베타(Roberto Coda Zabetta)의 작품.
2 집주인인 건축가 티치아노 부다피에리와 카트린 보트랭 부부.



침실 앞 테라스가 내다보이는 다이닝 룸. 티치아노가 직접 디자인한 다이닝 테이블 ‘트라토(Tratto)’와 그의 딸 비앙카와 함께 만든 펜던트 조명이 눈에 띈다. 조명은 ‘두 번째 삶(Second Life)’이란 주제로 85개의 재활용 램프를 사용해 완성했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허물다
큰 유리문 밖으로 보이는 고딕 건축 양식의 성당이 모노크롬을 연상케 하는 벽면과 어우러지면서 이색적인 전경을 그리는 거실. 이런 섬세함까지도 부부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이 점에서 양쪽 면에 있는 유리문은 다양한 역할을 하는 듯하다. 사실 카트린은 거실과 야외 가든의 경계가 없길 원했다. 그렇기에 높은 천장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거실에 큰 유리문을 들인 것. 가변적으로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할 것이 필요했으나 그것으로 인해 자연과 분리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문이 닫혀 있어도 언제 어디서든 가든의 모습이 액자 속 그림처럼 펼쳐진다.

집을 찬찬히 둘러보면 컬러부터 스타일링까지 인테리어를 통한 스토리텔링이 드러난다. 티치아노는 루이 비통, 지방시, 지미 추, 랑방 등 수많은 패션 브랜드의 오픈 스토어를 디자인하면서 브랜드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 그래서인지 공간에 스토리를 담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집에서도 적용되는 듯하다. “에토레 소트사스가 저에게 디자인의 비전을 제시했다면 포토그래퍼 구이도 구이디(Guido Guidi)의 작품은 신선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도움을 주었어요.” 티치아노는 구이도 구이디를 통해 건축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정형화되지 않은 신선한 모습을 작품으로 담아낸 구이도 구이디의 예술적인 눈을 빌려 개성 있는 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강렬한 레드 컬러로 공간에 콘트라스트를 준 다이닝 룸. 벽면의 드로잉은 추상화가 닉 데버루(Nick Devereux)의 작품이며 천장의 콘셉추얼한 브론즈 아트 피스는 베키 비슬리의 작품이다.



1 부부의 침실은 평온함을 주는 그린 컬러를 선택했다. 벽면에 시리즈로 걸어둔 사진은 린다 프레그니 니글러(Linda Fregni Nagler)의 ‘정체불명의 애도자들(Unidentified Mourners)’이다. 컨템퍼러리한 분위기와 반전되는 클래식한 샹들리에는 900년대 초반의 무라노 샹들리에로 공간의 매력을 더한다.
2 가든이 내다보이는 침실의 창가 쪽. 서재로 사용하는 이곳은 티치아노가 작업할 때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 프랑코 알비니의 빈티지 데스크와 체어가 미드센추리의 미니멀함을 담고 있다.




매력적인 공간의 모노크롬
이 집에서 디자인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요소를 찾는다면 단연 컬러가 아닐까 싶다. 주거 공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채도 높은 컬러를 택해 강렬한 느낌을 전하고 있는 것. 특히 공간마다 각기 다른 컬러를 적용해 원하는 분위기를 끌어낸 점이 매우 흥미롭다. 중요 공간은 높은 채도의 컬러를 택하고 이 외의 곳은 다소 낮은 채도의 컬러를 포인트로 활용해 공간마다 컬러의 강약을 조절한 것이 매력적.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활기찬 에너지를 얻는 거실은 블루, 초대의 자리가 되고 항상 즐거운 기운을 전하는 다이닝 룸은 레드, 휴식과 숙면을 취하는 부부의 침실은 심신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그린 컬러를 사용했다. 가장 먼저 집의 인상을 결정하는 입구 쪽 복도는 연두색으로 산뜻한 느낌을 전한다. 이탈리아 건축가 에르네스토 나탄 로제르스가 “숟가락에서부터 도시까지(From the Spoon to the Town)”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작은 요소로 시작한 디자인이 모이고 범위가 확장되면서 큰 도시까지 이룬다는 뜻. 티치아노와 카트린의 집은 두 사람이 추구하는 예술적 감각이 한데 섞이며 이색적인 작은 도시를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요리를 즐기는 부부는 부엌이 미적이기보다 기능적인 공간이 되길 원했다. 그렇기에 기능성을 더한 작업 테이블은 티치아노가 직접 디자인했으며 여기에 건축가 오트마르 바르트(Othmar Barth)의 셀라 체어를 매치했다. 글라스와 브라스 소재의 천장 조명은 페데리코 페리(Federico Peri)가 디자인한 것.


1 프렌치한 골드 프레임이 돋보이는 거울이 눈길을 사로잡는 게스트 배스 룸. 다채로운 컬러의 오브제와 컨템퍼러리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가구를 배치해 유니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2 가든으로 바로 연결되는 침실. 빈티지 글라스를 수집하는 티치아노는 컬러감 있는 작은 오브제들로 공간에 생동감을 더했다. 허먼 밀러의 임스 체어 옆에 놓은 퀴부의 래빗 램프가 앙증맞다.

Editor김소현

Photographer레이문(Moon Ray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