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교감하는 모던 하우스 하우징 March, 2019 그린 톤의 컬러와 어우러지는 자연 소재의 물성이 그대로 표출되는 공간은 보는것만으로도 심신을 차분하게 만든다. 건축가 부부인 조이 챈과 말린 이어스의 집은 창작과 절제, 자신들만의 예술 철학으로 색다른 무드를 완성했다.

순수 예술로 물들인 재생 공간
높은 천고와 여러 개의 큰 창, 넓은 거실의 콘크리트 기둥 등 무엇 하나 예사롭지 않다. 이 집은 오래전에 신발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곳. 건축가 부부인 조이 챈(Zoe Chan)과 말린 이어스(Marlin Eayrs)의 아이디어와 손길로 새 생명을 얻은 공간이다. 번화가인 런던 동부의 쇼디치 지역에 위치한 이들의 집, 더 벨디(The Beldi)는 콘크리트 더미가 자아내는 삭막한 분위기를 지우고 가족만의 아늑한 보금자리로 변신했다. 건물 외벽의 수많은 창은 모두 살리고 실내 중심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벽을 허물어 넓은 거실과 다이닝 룸을 꾸몄다. 이 덕분에 시간마다 다채로운 명도의 햇빛이 집 안으로 스며들어와 리드미컬한 텍스처가 가득한 공간을 이룬 것. 아마도 부부는 이러한 섬세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마음과 영혼으로 집을 만들어요.” 부부는 두 사람이 추구하는 예술 철학을 공간에 녹여내려 노력한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윌리엄 모리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과 공예 운동 ‘아트 앤 크래프트 무브먼트’를 지향하는 부부. 건축과 가구 분야에서 수공업의 부활을 꾀하던 예술 운동의 정신을 살려 공간에 담아냈다. 순수 예술을 대표하는 공예품을 중심으로 집을 꾸민 것이 대표적인 예. 특히 부부의 협업이 빛났다. 건축의 터를 발견하고 인테리어를 구상하는 아내 조이 챈과 실질적인 건축 설계와 시공 작업을 담당하는 남편 말린 이어스의 완벽한 하모니로 예술이 공간에 더욱더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챈 앤 이어스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건축 설계 시 과감한 시도를 해왔지만 더 벨디만큼은 가감 없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려 했다고. 공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연 소재도 한몫했다. 석고 벽면과 오크 패널, 라탄 짜임이 돋보이는 가구, 마치 천연 염색을 한 듯한 페인트칠 등 모든 것이 부부가 갈망하는 순수 예술을 대변하고 있다.

큰 창으로 햇볕이 따스하게 스며드는 거실. 중앙에 놓은 마리오 벨리니 카말레온다(Mario Bellini Camaleonda) 소파는 올리브 그린 컬러의 가죽으로, 라운드의 유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치클루스(Zyklus) 라운지 체어는 연베이지 컬러의 벨벳으로 업홀스터리해 전체 분위기와 조화를 이뤘다.


옥상 가든과 이어진 다이닝 공간. 감각적인 그린 톤의 벽면 컬러가 식물과 어우러져 싱그러운 분위기를 완성했다. 샌드 빛 연한 우드 컬러가 돋보이는 가구는 영국 수공예 숍 더 뉴 크래프트맨(The New Craftsmen) 제품으로 테이블은 개러스 닐(Gareth Neal), 체어는 수 스킨(Sue Skeen)이 디자인했다. 벽에 놓아둔 페인팅은 마커스 제임스(Marcus James)의 작품.


1 과거에 신발 공장에서 사용한 철제 프레임을 그대로 살리고 페넬 그린 컬러의 페인트로 도색해 공간의 통일감을 살렸다. 버드나무 소재의 짜임이 돋보이는 윌로 체어는 개러스 닐이 디자인했다.
2 더 벨디에서 건축가 조이 챈과 말린 이어스 부부 그리고 딸 맥스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1 그린 컬러와 우드 소재의 가구를 배치해 아늑한 분위기의 다이닝 룸. 격자 프레임 창문이 이색적인 매력을 더한다.
2 다이닝 룸의 캐비닛은 그린이 섞인 블루 컬러로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 장에는 크리스토퍼 매가샥(Christopher Magarshak)의 빈티지 오브제와 다양한 디자인의 플레이트를 넣었다.
3 거실과 이어지는 오픈 키친 형태의 요리 공간. 그린과 블루, 우드의 베이지 톤이 정갈하면서도 절제된 미를 뽐낸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스터디 룸. 벽에 부착한 그린 컬러인 래커 벤치 앞으로 수 스킨의 테라초 트렁크 테이블을 놓았다. 벽에 건 작품은 스티븐 라이트(Stephen Wright)의 페인팅이다.



사막의 생기를 더한 오아시스
마치 빛바랜 듯한 샌드 컬러를 중심으로 옅은 그린과 블루가 오묘한 분위기를 그린다. “더 벨디는 도시 안의 오아시스와도 같아요. 컬러의 톤과 텍스처가 겹겹이 쌓여 마음의 평온함을 선물하죠.” 하나의 자연경관을 떠오르게 하는 감각적인 색감은 더 벨디의 대표적인 특징. 가족의 특별한 추억과 스토리가 서려 있기에 더욱 돋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모로코에서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린 조이 챈과 말린 이어스. 가장 행복한 순간의 장면을 컬러와 장식 요소로 꾸몄는데 특히 점토 느낌의 테라코타 베즈매트(Terracotta Bejmat) 모로칸 타일을 바닥 전체에 깔아 이국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것이 특징. 이외에도 중국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타일, 하나하나의 조각으로 창조적인 패턴을 만든 바닥 장식 등. 추억에서 시작한 영감이 하나의 아이디어가 되어 공간의 곳곳에 생기를 더한다. 위빙 디자이너 크리스터벨 밸푸어(Christabel Balfour)가 짠 침실의 블라인드, 럭셔리 공예 스토어 더 뉴 크래프트맨(The New Craftsman)의 핸드메이드 가구들은 앞서 언급한 순수 예술 오브제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분위기의 밸런스를 유지한다. “무언가의 가치는 만드는 과정을 반영한다”는 존 러스킨의 말처럼 부부는 가치 있는 집에 대한 고민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의 집이 된 더 벨디 때문이었을까. 조이 챈과 말린 이어스는 친환경 건축물에 푹 빠져 있다. 이제 막 두 살이 된 딸 맥스가 미래의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더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꿈꾸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을 만드는 것. 건축가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 되는 숙제지만 또 한편으로 이들이 추구하는 예술적 철학이 잘 맞아떨어지기에 더 벨디처럼 자연 친화적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계속해서 도전하고 싶다고. “현재의 순간을 즐기며 살고 싶어요.” 철학자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을 인용해 부부는 매일을, 소중한 지금을 가족의 공간에 그저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1 마스터 베드 룸 한쪽에 마련한 욕실. 조밀하게 짠 리넨 블라인드는 크리스터벨 밸푸어(Christabel Balfour)의 제품으로 고급스러운 컬러감이 돋보인다.
2 주말 오후면 평온하게 배스 타임을 즐긴다는 조이 챈을 위해 만든 공간이다. 창문 프레임의 페일 블루와 하모니를 이루는 아보카도 컬러의 욕조는 워터 모노폴리(Water Monopoly)의 제품.



영국 디자이너 파예 투굿(Faye Toogood)과 이탈리아 패브릭 브랜드 원스 밀라노(Once Milano)의 협업으로 탄생한 리넨으로 꾸민 침실. 은은한 컬러로 조화를 이룬 공간에 파예 웨이 웨이(Faye Wei Wei)의 페인팅이 강렬한 인상을 더한다.

Editor김소현

Photographer레이문(@moonray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