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자유로운 무채색의 변주 거실 December, 2018 세로형으로 길게 뻗은 공간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이건 마치 고래 배 속을 유영하는 탐험가의 마음 아닌가. 무엇 하나 정형화되지 않아 고정관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노톤 하우스. 차분하게 정제된 컬러도 이렇게나 입체적일 수 있다.

집은 무조건 넓어 보여야 한다? 무채색은 밋밋하고 차가워 보인다? 이 집에서는 통하지 않는 공식이다. 분당구 운중동에 위치한 206㎡
의 테라스하우스는 집과 삶이 어떻게 조응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 맞춤형으로 다시 태어난 공간은 구조도 컬러도 기존의 법칙을 과감히 깨뜨렸다.


“부러 방이 많아야 할 이유도, 무턱대고 넓어 보여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어요. 염두에 둔 건 오로지 둘이 머무는 동안 ‘좋아하는 걸 오래 느낄 수 있는가’였죠.”


블랙과 그레이를 중심으로 한 모노톤, 다이닝 룸에 집중한 공간 구성까지 누군가에게는 과감한 선택이 이들 부부에게는 그저 일상에 순응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좋아하는 컬러를 쓰고 자주 머무는 공간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빚어진.





독창적인 다이닝 룸 솔루션
5년간 살던 고층 아파트를 정리하고 땅에 가까운 저층 집을 고려하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원주택은 관리의 부담이 먼저 다가왔고, 그렇다고 더 이상 시티 라인이 눈에 걸리는 도심의 삶도 원치 않았다. 전원과 도시의 중간쯤, 테라스하우스에 관심을 돌린 이유. 덕분에 지금은 거실 창 너머 한 뼘 자연이 그림처럼 걸리고 호젓한 단지를 빠져나가면 코앞에 활기찬 도심이 반긴다.


“지인이 방문하는 경우가 잦아 다이닝 룸도 상업 공간을 모티프 삼아 홈 바처럼 디자인했어요. 원래 ㄷ자형이었던 주방의 거실 쪽 벽을 철거하고 아일랜드를 안쪽으로 밀어 넣은 후 벽에 꼭 맞는 키 큰 장을 맞춤 제작해 살림살이도 감쪽같이 감췄지요. 신경 쓴 만큼 만족도도 높아요(웃음).”


디자인과 시공을 맡은 카민디자인의 솔루션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부부가 먼저 살던 집의 디자인을 맡은 후 또 한 번 파트너십을 맺게 된 때문일까. 두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꿰고 있던 김창건 대표는 주저 없이 다이닝 룸 디자인을 제안했다.


“보편적으로 주방과 다이닝 공간은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간 사이에 철거할 수 없는 기둥벽이 자리 잡고 있어서, 도리어 이를 활용해 분리하는 작업을 했어요. 여기에 블랙 컬러의 루버 천장 디자인을 넣어서 서로 다른 공간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표현했지요.” 덕분에 기존 식탁 위에 포인트 조명이 내려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보다 모던하고 시크한 다이닝&바 공간이 연출되었다.



1 입구에서 바라본 다이닝 룸. 지인이 많이 찾는 만큼 넉넉한 8인용 테이블을 세팅했다. 개방감이 느껴지도록 천장도 올리고 벽과 천장을 도장으로 마감해 기존 구조에서 느껴지던 답답함을 해소했다.
2 주방 쪽엔 전체적인 컬러감에 맞는 그레이 톤의 키 큰 장을 들이고, 가운데 꽤 큰 규모의 아일랜드에는 싱크대와 인덕션을 배치했다. 또 거실에서 보이는 주방의 정면 쪽으로 식료품과 식기를 최대한 많이 수납할 수 있는 월넛 루버 도어의 팬트리장을 만들어 묵직하고 현대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안쪽 아일랜드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블랙 컬러의 루버 천장 디자인과 조명으로 홈 바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창밖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그림처럼 마주할 수 있다.




모든 곳으로 통하는 동선의 즐거움
복도가 긴 세로형 집은 주방과 거실 등의 공용 공간이 답답한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는데, 철거가 불가능한 것은 되레 디자인적 요소로 품어 재미있는 인테리어를 완성했다. 활주로형으로 길게 뻗은 복도를 따라 입구 쪽에 게스트 룸과 서재, 다용도실이 자리하고 다이닝 룸과 리빙 룸이 이웃해 있다. 공용 공간을 지나 더 안쪽에는 부부의 마스터 룸과 욕실, 드레스 룸, 홈시어터 룸이 원형으로 자리한다. 침실에서 돌아 나오면 바로 서브 거실로 통하고 그 사이의 직선형 드레스 룸을 따라가면 바로 홈시어터 룸으로 연결되는 형태. 언뜻 단조로워 보이지만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공간이 나타나는 입체적 구조로, 톤 온 톤의 무채색을 사용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다양한 표정을 완성할 수 있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체적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모던한 스타일이지만 현미경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자재로 질감의 변주를 꾀하는 한편, 대부분의 가구도 제작해 한 몸과 같이 통일감 있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1 아늑하게 꾸민 침실은 천장에 이색적인 샹들리에를 달아 장식적인 느낌을 더했다.
2 침대 맞은편 화장대에는 프린트베이커리에서 구입한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으로 생동감을 주었다.
3 침실에서 돌아 나오면 마주하게 되는 공용 세면대. 서브 거실과 드레스 룸으로 이어진다.
4 자연의 질감을 그대로를 살려 디자인한 욕실은 큰 사이즈의 수입 타일을 써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욕조와 샤워 부스를 마련해 부티크 호텔과 같은 공간을 완성했다.




물성의 믹스 매치
자칫 어둡고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이건만 이렇게 다양한 표정을 완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차별화된 ‘한 끗’이 존재한다. 천장에서 일자로 이어지는 조명이, 공간을 나누되 유리 벽체를 통해 개방감과 넓은 시야를 확보한 요소가 그러하다. “어차피 둘만 사용할 테니 더 이상의 방은 무의미했고 취미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지요. 안쪽에 자리한 홈시어터 룸,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서재가 그렇게 탄생했어요. 특히 다소 좁은 현관 쪽에서 바로 보이는 서재는 유리문이 입체적인 느낌을 주면서 답답함을 해결하는 솔루션이 되었어요.”


또 하나. 공간에 자리한 가구는 묵직하고 자연스러운 원목을 택해 ‘온도’를 더했다. 자연스러운 질감이 면면을 한층 부드럽게 감싸는 것은 물론 모노톤 공간과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우드 소재의 루버 스타일, 나무 특유의 결을 살린 제작 가구, 우드 상판 등 소재로 다양성을 보여줘 지루함도 덜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소 무심했던 테라스를 더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부부.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처럼 결코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일상의 속도에 맞게 삶의 방향에 맞춰, 매일을 충일하게 가꿔가는 그들에게 집은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존 집에서 사용하던 고풍스러운 가구와 빈백을 믹스 매치해 완성한 홈시어터 룸. 블랙 컬러의 스틸 프레임 도어로 방 안의 방과 같은 구조를 실현했다.



1 자칫 좁아 보일 수 있는 입구 쪽 방을 없애고 유리 벽체로 디자인해 개방감을 확보한 서재는 공간의 구분 없이 복도와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2 부부를 위한 홈시어터 룸.
3 매끈한 제작 가구는 수납의 기능에 충실한 동시에 집의 통일감을 완성해준다.




인테리어 디자인 및 시공 카민디자인(02-545-2208 www.carmine-design.com)

Editor홍지은

Photographer이종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