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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 디렉터 에마뉘엘 드 베이제

파리 17구 몽소 공원 근처 한적한 길가, 아르데코 미술로 잘 알려진 니심 드 카몽도 미술관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오스마니안 건물 1층에는 베를린의 유명 콘셉트 스토어 더 코너(The Corner)의 공동 창립자인 에마뉘엘 드 베이제 (Emmanuel de Bayser)의 보금자리가 있다. 베를린과 파리라는 매력적인 두 도시를 오가며 생활하는 그는 3개월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컬렉션이 쏟아지는 패션 분야에서 벌써15년째 일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견인하는 패션 신에 몸담고 있는 그이지만 사적인 공간만큼은 오히려 명상에 잠길 수 있도록 힘을 빼고 은은하고 심플하게 꾸몄다. 파리 아파트는 패션 위크 동안 숨 가쁘게 이어지는 브랜드 미팅과 바잉 후 반려견 아키와 함께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의 집은 서로 다른 재질의 오브제가 대조를 이루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인상을 준다. 개중에서도 캘리포니아의 푸르름을 떠올리게 하는 세계적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의 반구와 세르주 로슈(Serge Roche)의 1930년대 석고 조명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대 미술 작품부터 20세기 프랑스 산업 디자인을 이끈 디자이너의 가구가 기분 좋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의 집은 마치 잘 큐레이션한 하나의 갤러리처럼 다가온다.



1 두 거실 중 하나로 서재와 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빠져들 것 같은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은 그가 최근에 구입한 것으로 오랜 시간 고민 끝에 구매를 결정했다. 석고 조명은 1930년대 세르주 로슈, 붉은색 소파는 장 로이에르(Jean Royère)가 디자인했으며 화이트 소파는 직접 제작 주문했다. 옐로 소파는 모겐스 라센, 벽난로 위 세라믹은 조르주 주브(Georges Jouve), 탁자는 프란세스코 발자노(Francesco Balzano).
2 큰 키에 호탕한 인상의 에마뉘엘은 패션업계에 뛰어들기 전에는 5년간 로레알 아르마니 부서에서 일했다. 우연히 군복무 대신 선택한 뮌헨의 프랑스 회사에서의 첫 직장 생활을 시작으로 독일과의 인연이 이어졌다고. 베를린에서 ‘더 코너’라는 이름으로 동업자와 함께 3개의 콘셉트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다.



애니시 커푸어부터 피에르 잔느레까지
프랑스의 야수파 작가 조르주 데발리에르(George Desvallières)의 증손주인 그는 18, 19세기 예술적 감수성 안에서 성장했다. 예술가였던 외증조 할아버지와 갤러리스트였던 할아버지 덕에 자연스럽게 예술과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독립해서 그만의 공간을 꾸밀 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케아 가구를 선택했다. 현대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찰스&레이 임스나 조지 넬슨과 같은 1960~70년대 미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찾기 시작했다.
“25년 전쯤 이베이가 생소하던 시절 갖고 싶은 디자이너의 가구가 생기면 여러 밤을 새우며 경매에 참여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렇게 처음 이베이를 통해 구입한 가구가 플로렌스 놀(Florence Knoll)의 아이코닉한 소파와 의자예요. 소파는 여전히 애장하는 가구 중 하나로 파리와 베를린 아파트를 거쳐 지금은 베를린 매장에 디스플레이되어 있답니다.”
넘치도록 화려하게 표현되는 18세기 로코코 장식이나 색이 강한 야수파 미술과 함께 자란 그가 미니멀리즘 디자인에 몰두하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색이나 장식이 많은 공간에 들어서면 금세 질리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니멀한 디자인에 자연스레 끌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꾸민 집이 안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점차 관심의 스펙트럼을 넓혀 프랑스 건축가로 눈을 돌렸으며 장 프루베의 스탠더 SP 시리즈를 시작으로 샤를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세르주 무이의 디자인 가구로 자신만의 공간을 채워나갔다.


책을 사랑하는 그가 특별히 꾸민 서재. 장 프루베의 스탠다드 시리즈의 푸른색 책상과 의자가 입체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1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복도를 중심으로 공간은 양쪽으로 정확히 배분된다. 대리석 탁자는 프랑스
건축가 조제프 디랑(Joseph Dirand)의 모듈러(Modular)이고, 램프는 조르주 주브, 조각은 알렉상드르 놀(Alexandre Noll), 거울은 린 보트랭(Line Vautrin).
2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을 건 응접실 맞은편에 위치한 또 다른 응접실. 피에르 잔느레가 디자인한 소파가 가장 먼저 반긴다.
3 알렉상드르 놀이 디자인한 의자와 12세기에 만든 여성 토르소 상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4 두 번째 거실은 주방과 이어져 있다. 샤를로트 페리앙, 피에르 잔느레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채워 가구 갤러리를 방불케한다.



감각으로 채운 홈 갤러리
그는 천장이 높고 복도를 중심으로 정확히 양쪽으로 분리되는 아파트 구조에 한눈에 반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프랑스 건축가 조제프 디랑의 대리석 탁자가 있는 중앙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 모두 거실과 응접실을 마련했다. 한 거실의 창은 길가로, 다른 창은 중정으로 나 있어 하루 종일 해가 쏟아지고 사방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화장실과 주방을 제외하고는 큰 리노베이션 없이 조금 손상되었던 벽을 다시 정비하고, 새로 서재를 꾸미면서 벽을 따뜻한 느낌의 아이보리색 천으로 마감하는 정도로 매무새를 고쳤다. 피에르 잔느레, 장 로이에르 등 20세기 프랑스 디자이너의 가구로 거실을 완성한 그는 각 가구의 조형미를 최대한 살리고 공간미를 더해줄 오브제로 세라믹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오브제는 매일 곁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면에서 조르주 주브 세라믹의 불완전한 조형미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죠. 전형적이지 않아 어떻게 어느 시선에서 보느냐, 혹은 햇살이 어떠하냐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수집한 가구나 알렉상드르 놀의 조각과 매치해보며 완벽한 자리를 찾으려 노력해요.”
어느 한편은 자신이 운영하는 더 코너의 쇼윈도만큼 볼거리가 넘치고 한편은 현대 갤러리처럼 영감으로 가득하며 또 한쪽은 잘 꾸민 부티크 호텔같이 휴식으로 가득한 에마뉘엘의 아파트. 빤한 말이지만 취향으로 가득한 그의 공간은 스스로 세포분열을 하듯, 매일처럼 새로운 인상으로 가득하다.


1 호텔처럼 단정하게 정돈된 그의 침실. 여름이면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다. 공간을 더욱 유니크하게 만들어주는 조명은 세르주 무이.
2 리노베이션이 필요 없었던 아파트에서 그가 유일하게 바꾼 공간은 바로 주방. 공사는 약 2주 동안 진행했는데 골격은 물론 디테일까지 일일이 챙겼다고.
3 게스트 룸 맞은편에서 바라본 모습. 정갈하게 정리한 공간은 여백까지 계산된 듯 모든 오브제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장 프루베의 커다란 식탁이 있는 이 공간은 주로 에마뉘엘이 손님을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할 때 사용한다. 식탁은 프루베의 그란티노(Granito) 시리즈, 의자는 스탠다드(Standard), 벽 조명은 세르주 무이, 벽에 걸린 선반은 샤를로트 페리앙, 조각은 가봉에서 온 팡(Fang) 디자인이다.

2020년 1월
Editor 홍지은 Photographer 김민은(파리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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