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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간이 무대가 될 때
  • 프라다 건축&공간 디렉터 로베르토 바초키

스미고 번지고 깃드는
“공간은 그 자체로 성격과 영혼이 있어요.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레퍼런스가 가득하지요.”

아레초 구시가지에서 고건축물과 사람, 자연이 공존하는 것을 관찰하며 성장한 로베르토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공간’을 존중하는 방식을 터득했다. 700여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13세기 팔라초를 매입한 것도 그에게는 그리 놀랍지 않은 선택이었다. 과감한 리노베이션보다 복원과 보존, 전기 설비 작업에 매진했다는 그는 햇빛을 들이기 위해 중정으로 난 모든 창에 통유리를 달았다. 천장을 뒤덮던 하얀색 페인트를 걷어내고 나니 선물처럼 18세기에 완성된 벽화가 드러났다. 바닥 마감에도 신경 썼다. 2층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심하게 훼손된 건물 바닥은 코초페스토(Cocciopesto)라는 이탈리아 전통 방식으로 마감했는데 이는 베니스 건축에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으깬 테라코타와 회반죽, 기름을 섞어 만들어 위생적인 데다 마르면 짙은 붉은빛을 띤다. 붉은 벽돌로 지은 공간의 기운을 훼손하지 않고 존중하고자한 그의 배려가 읽히는 대목이다. “다 뜯어고치려면 무엇하러 1300년에 지은 집에 살겠습니까?” 오히려 되묻는 그는 건물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과감한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노출 천장과 프레스코, 코초페스토 바닥 장식과 회반죽 벽의 따스한 질감처럼 오래된 건물이 지닌 기운을 유지하고 배려하는 것이라는 철학을 이렇게 증명한 셈이다. 이어 땅의 기운을 살펴 공간을 해석하는 것이 풍수지리 사상과 닮았다는 말에 그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직접 보기도 전에 이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의도로 디자인하면 파괴적이 되어버려요. 나는 공간에 들어서면 이것이 나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그게 먼저예요.”


로베르토 바초키(Roberto Baciocchi)의 집 주소를 말하자 택시 기사는 단번에 “무슨 일로 프라다 건축가의 집에 가느냐” 되묻는다. 하긴 이 작은 동네에서 그를 모를 리 없으리라. 막 다다른 건물은 흡사 겹겹의 선물 상자처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묵직한 나무 문을 밀면 보이는 복도 끝에는 곧장 안뜰로 향하는 유리문이 있고 왼편 계단을 오르면 그의 집 안으로 연결된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동화에 등장할 법한 빨간 모자의 난쟁이 모형 여럿이 거친 질감의 건물 벽과 어우러지며 묘하게 즐거운 인상을 자아낸다.

벽장을 열면 문이 나타나고 그 앞에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 옷장과 책장은 모두 로베르토가 직접 디자인했으며 의자는 1950년대 칼 야콥스(Carl Jacobs)의 제이슨(Jason), 소파는 빈티지.


1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땅을 버릴 만큼 어리석어진다”라고 말하는 로베르토는 여성을 예찬하는 진정한 페미니스트. 부인 로셀라(Rosella)는 과거 모델로 활동했는데 길게 풀어 내린 은발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2 붉은색으로 칠한 부인 로셀라의 욕실은 특별히 로베르토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유기처럼 관리하기 힘들다는 은식기를 여전히 사용하고 커피머신 대신에 모카 포트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 로베르토는 가지각색의 색연필로 디자인을 하고 도면을 그린다. 식문화에 관심이 지대해 최근에는 식기도 직접 작업한다. 대리석에서부터 오래된 오크 나무 소재에 이르기까지 그의 섬세하면서도 획기적인 디자인은 닐루파르 갤러리(Nilufar Gallery)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화가였던 장인의 드로잉을 플렉시 유리에 담아 벽을 가득 채웠다. 책상에는 컴퓨터 한 대 없이 삼각자, 드로잉만 놓여 있을 뿐이다. 벽장의 침대는 여름에 종종 낮잠을 자는 곳인데 에어컨이 나오는 유일한공간이기 때문. 조명은 지오 폰티가 디자인했다.



프라다맨의 전방위 런웨이
흔히 한 회사에 오래 근속한 사람을 ‘OO맨’이라 부르는데, 로베르토에게는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프라다맨(Prada Man)이라는 수식이 따른다. 약 40년 동안 프라다와 함께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건축 측량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향 아레초를 떠나 피렌체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건축보다 복원이나 디자인에 관심이 컸다. 그리고 1976년, 운명처럼 당시 파산 위기에 놓인 가족 회사 프라다에 동참한 정치학도 미우치아 프라다를 만나게 된다. 라포르첼라나 비앙카(La Porcellana Bianca)라는 도자기 브랜드 론칭을 시작으로 그녀 곁에서 브랜드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함께하며 프라다뿐 아니라 세컨드 라인인 미우미우, 처치스 등의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 전면을 총괄하는 등 긴 여정을 이어왔다.

“1980년대 이탈리아의 패션계에는 여성이 전적으로 드문 시기였습니다. 다소 정치적이지만 패션 디자이너가 된 미우치아 덕분에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고 21세기 가장 흥미로웠던 시기를 경험하며 현대를 바라볼 혜안도 갖게 되었지요.”

그는 매장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라다 본점이 들어서 있는 밀라노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 비토리오(Galleria Vittorio Emanuele II)의 돔 복원, 베니스 프라다 재단 건물 복원을 비롯해 상하이시와 프라다가 협력해 만들어낸 예술 공간 롱 자이(Rong Zhai) 복원 및 실내 디자인까지 굵직굵직한 프라다 예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최근에는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이 디자인한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의 카페 루체의 실내 장식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건 식기 디자인을 밀라노의 닐루파르 갤러리를 통해 선보이고 있을 정도로 전방위로 활동 중이다.


1 700여 년 역사를 품은 저택은 햇빛이 스미는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빚어낸다.
2 로셀라의 방. 오래된 건물이 지닌 기운과 힘을 믿는 그들은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회벽으로 마감하고 1970~80년대 디자인의 가구를 두어 최소한의 리노베이션만 진행했다.



부드럽고 드라마틱한 공간의 미장센
늘 트렌드의 선두에 있지만 유구한 시그너처를 잃지 않는 굴지의 패션 하우스처럼 그의 공간은 현대적인 듯 고풍스럽고 동시에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결’로 가득하다. 집에 들어오는 순간 마치 연극의 막이 오른 듯한 느낌을 받는 건 그래서다. 문을 열면 복도와 계단으로 통하는 또 하나의 문이 열리고 서재의 벽장을 열면 불이 켜지면서 침대가 나타나는 식이다. 모든 공간은 새로운 색감과 질감으로 구현해놓아 막이 내릴 때 마다 손뼉을 치고 싶을 만큼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공간의 요소요소가 완벽한 미장센에 가깝다고나 할까. 어쩌면 이리도 극적으로 연출했을까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다. 공간은 그 자체로 판타지를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표현해야 한다고 믿는 뚝심이 곳곳에 배어 있다.

“막 가공한 반들거리는 하얀 벽은 영감을 주거나 자극을 주지 못하지요. 때로는 아무 장식이 없는 벽과 공간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이 스며들어 생명을 얻습니다. 이를테면 건물의 피부나 근육이 되는 거지요. 이것을 바라보면 꿈을 꿀 수밖에 없어요.”

그의 공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면 누구라도 색을 선택하겠지만 로베르토는 색보다 재료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베네치아산 거울로 만든 욕실이나 온통 옥색 대리석으로 표현한 화장실, 회벽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거실에서 이러한 취향이 오롯이 드러난다.

“벨벳을 많이 사용하는데, 햇빛을 흡수하고 반사해 전혀 예상치 못한 질감을 표현해내는 게 참 매력적이지요. 재료에 빛이 닿았을 때 그 드라마틱한 표현력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색은 그다음이지요.”

그러고는 집을 당신의, 내면의 연장선으로 생각해도 되겠느냐는 물음에 읊조리듯 고백한다. “이 집은 바로 나예요. 소소한 것에도 퀄리티를 찾고자 하는 평생의 노력이 어떤 프로젝트나 목적이 아닌, 본연의 상태로 구현된 합(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깊은 눈빛과 담담한 목소리로 욕심부리지 않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삶. 덤덤한 듯 다채롭고 켜켜이 쌓인 시간의 깊이를 존중하는 집은 로베르토를 투영한 아니 그 자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1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을 때는 마치 연극에서 막을 내리듯 1층과 2층 사이의 문을 닫는다. 문 역시 로베르토가 디자인하고 주세페가 그림으로 완성했다.
2 2층으로 오르면 바로 보이는 드레스룸. 로베르토가 직접 디자인한 공간으로 강렬한 컬러 블로킹이 인상적이다.


피에타 상을 보며 인간이 아니라 신이 만든 것 같다는 대중의 찬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실수를 한 건 비단 미켈란젤로뿐만 아니다. 유럽 건축물 파사드에 종종 새겨진 건축가의 이름은 그들의 야망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로베르토는 “누군가가 내가 디자인한 공간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라고 말하는 것이 내가 가장 듣고 싶은 칭찬이다”라며 자신은 남기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역설한다. 자연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연출한 중정이 보이는 주방 옆 공간.

2020년 1월
Editor 홍지은 Photographer 김민은(파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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